[영화] 후아유
그때 그 시절 영화만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떤 느낌이란 게 있다. 그 시절만의 매력이 화면 가득 욱여넣어져 있어 가끔은 실제보다도 더 아름답게 그때를 추억하게 되기도 하고 가끔은 흐려진 기억만큼 생경해진 풍경에 기억을 더듬게 되기도 한다. 매끈하고 선명하지 않은 텁텁한 화면은 이미 반쯤 지워져 흐릿 해진 기억과 묘하게 닮아있고 화면 뒤로 흐르는 영화 속 ost는 후에 몇 차례 리메이크된 탓에 이제는 새로이 느껴진다.
조승우, 이나영 주연의 영화 '후아유'는 63빌딩 아쿠아리움에서 다이버로 일하는 '인주'와 게임 개발자 '형태'가 온라인 게임에서 만나 서서히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를 영화로만 본다면 사실 이야기할 게 별로 없다. 그 시절에나 통했을 법한 '아바타'라는 소재에 그때 한참 유행했던 뮤직비디오 수준의 스토리를 더해 놓은, 시놉시스가 다인 그런 영화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치 모든 게 괜찮게 느껴졌다. '인주'가 63빌딩을 오르내리며 털어내지 못한 과거를 되뇌일 때도, 게임에서 처음 만난, 이름조차 모르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을 때도, '형태'가 인주의 마음을 사기 위해 눈치 없는 대사를 남발할 때도, 게임 속 아바타에 마음을 주는 인주에게 때 이른 고백을 할 때도, '이런 어설픈 영화가 만들어지던 때가 있었구나'라는 평가 대신 '아 완전 저때 감성이다'라는 반가움을 쏟아내게 된다.
요즘 영화들과 비교하면 다소 거칠고 어설픈 이 영화가 괜찮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화 속에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영화의 배경인 63빌딩 아쿠아리움은 그 시절의 풍경을 더욱 선명히 비추는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인주와 형태가 처음 아쿠아리움에서 서로를 조우한 순간 우리 역시 처음 아쿠아리움에 발을 내딛던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아쿠아리움이 불러일으킨 몽글몽글한 감정에 정점을 찍는 것은 음악이다. 영상 뒤로 흐르는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 형태 역을 맡은 조승우 배우가 인주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부르는 윤종신의 '환생'. 긱스의 '짝사랑'.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그때 명곡들이 영화 내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곡은 롤러코스터의 '러브 바이러스'다. 러브 바이러스가 수록되어있는 롤러코스터 2집을 질릴 때까지 반복해서 들었던 터라 이 곡이 흘러나오는 순간 잊고 있던 그때의 미세한 느낌, 감정, 기억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를 한껏 그리워하며, 또 미화하며, 아쉬워하며 영화에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풀어넣다보면 싱겁던 스토리에도 살이 붙고 아쉽던 연출에도 정이 간다.
'그때를 느껴봤어야 이 영화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영화평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어설픈 영화에 마음이 동한 사람들은 아마도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영화로 그때를 추억하며 스스로가 풍성한 감성의 결을 만들어냈기에 이 성긴 영화에 망설임 없이 좋아요를 누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를 1시간 42분 동안 마음껏 추억하고 나면 인주와 형태의 기승전결 없는 사랑도 그때 감성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영화는 더 이상 평범한 멜로물이 아닌 감성 시절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된다.
그때를 아는 사람에게만큼은 특별할 수 있는 영화, 2002년 후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