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죽던 날
*본 글은 스포일러가 될만한 내용을 최대한 배제한 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은 10대 소녀의 자살로 이야기의 첫 운을 뗀다. 모든 것을 앗아갈 듯 매섭게 태풍이 치던 날, 외딴섬에 갇힌 소녀 '세진'이 실종된다. 절벽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노란 스니커즈 한 짝과 책상 위에 놓여진 단출한 편지 한 장이 그날의 진실을 대신한다. 폭풍우가 쓸고 간 자리엔 그럴듯한 진실만이 남아있다. 그만큼 요란한 태풍이었기에, 모든 것을 앗아갈 만큼 강력해 보였기에 모두가 구김 없이 그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복기를 앞둔 형사 '현수'가 세진의 실종을 마무리짓기 위해 외딴섬으로 향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폭풍우를 마주치기도 한다. 나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나 피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단 걸 알면서도 발버둥 치게 되는 그런 일들 말이다. 발버둥 쳐도 결과는 같다. 태풍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자잘한 잔해만을 엉뚱한 곳에 떨어뜨려 놓을 뿐이다. 현수는 외딴섬에 남은 잔해를 둘러본다. 분명 그것만으론 완전한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잔해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그럴듯한 진실뿐이니 말이다.
현수를 완전한 진실로 이끄는 것은 동질감이다. cctv 영상 속 세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현수는 한눈에 세진과 자신이 비슷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세진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폭풍으로 모든 것이 엉망이 돼버린 그날, 현수 역시 세진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수가 느끼는 동질감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세진의 팔에 난 상처를 알게 된 후부터다. 자신의 팔에 남은 흉터와 똑 닮은 세진의 상처를 확인한 현수는 마음속에 품었던 심증을 수면 위로 꺼내 보인다. 세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리 없다는 말뿐인 심증을 말이다.
이 영화가 죽음을 앞세워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 생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현수는 cctv에 찍힌 세진의 얼굴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모두가 분노로 가득 찬 세진의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읽어낼 때 오직 현수만이 발버둥 치는 생의 의지를 포착했다. 그녀 역시 세진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폭풍우가 치던 날이 있었기에 세진의 눈에 타오르는 어떤 것을 정확히 알아차린 것이다.
죽으려고 절벽에 선 것이 아니다. '실은 살려고 그런 거야.' 현수가 자신을 걱정하는 친구 '민정'에게 말한다. 살기 위해 자신의 팔에 스스로 상처를 냈다고. 죽으려 그런 것이 아니라 살려고 그런 거라고. 현수는 세진 역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진의 팔에 난 상처 역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생긴 상처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심증뿐이다. 현수의 말을 뒷받침해줄 물증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현수는 마지막으로 세진이 유일하게 마음을 줬다는 새엄마를 만난다. 세진의 실종을 전해 들은 새엄마 역시 다른 이들과 다름없이 세진의 자살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현수는 그런 그녀에게 말한다.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은 '그럴 애가 아니다'라는 한마디였다고.
'죽을만했다.'라는 말은 모든 것을 무력화시킨다. 현수가 증명하고자 했던 건 세진의 생의 의지다. 현수는 의미 없는 잔해들 사이에서 태풍이 쓸어가지 못한 어떤 것을 발견했다. 살고자 했던 세진이 남긴 흔적을 발견한 현수는 세진이 그렇게 죽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죽을만했다'라는 말로 지워진 생의 의지는 모든 것을 뒤엎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갖진 못한다. 그러나 현수를 움직이게 하는 어떤 원동력 정도는 되어주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볼 때 우린 어떤 눈을 하고 있는가. 현수가 가시화시키는 것은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 같은 것일 거다. 현수는 세진에게서 자신을 읽어냈다. 타인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처럼 가깝게 느꼈다. 무관심한 눈으로 타인의 죽음을 관망하고 판단하는 이들 사이에서 현수만이 세진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녀의 마지막을 들여다봤다.
이 영화가 전하는 진실은 따뜻한 위로에 가깝다. 세진이 마주한 태풍은 그녀의 모든 걸 앗아갈 정도로 매서웠다. 그럼에도 당연한 죽음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태풍이 모든 걸 휩쓸고 간 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란 절망감이 몸속에 남은 모든 생명력을 앗아가려 할 때에도 누군가 곁에서 따스히 손을 잡아준다면 느리더라도 한 발짝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영화는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무책임한 장담 대신 오늘 같은 내일이 계속될 거라 장담하지 말라고 말한다. '인생은 생각한 것보다 길어'. 이 마지막 말을 하기 위해 이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살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죽으라는 말보다도 무섭게 들릴 것이란 걸 알기에 에둘러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는 말로 살라는 말을 대신했을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끝내 태풍을 맞은 모든 이들에게 살아보라는 따스한 위로를 전하며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