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북오름 Dec 15. 2022

캠핑의 일희일비

삐약삐약 캠핑 일기 #1-4

고양이의 습격

첫날은 정신없이 세팅을 하느라 바빴다면 둘째 날은 좀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거실로 쓰고 있는 리빙쉘 텐트로 들어서면서 헉! 소리가 나왔다. 어젯밤 나 빼고 야식을 먹은 나머지 세명의 허술한 뒤처리로 고양이들이 기어들어와 난장을 해놓았다. 제대로 묶어놓지 않은 쓰레기봉투를 다 헤집어 놨으며 이리저리 올라타 뛰어다녔는지 테이블 위의 물건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져있었다.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벌레나 뱀까지는 생각해봤지만 고양이가 위협이 될 줄이야. 첫 캠핑 이후에도 몇 번의 고양이 습격을 당한 적이 있다. 텐트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텐트를 박박 긁어대는 일도 있고 자다가 툭툭 텐트를 건드리는 소리에 놀란 적도 있다. 이번 일을 겪은 뒤 자기 전에는 반드시 쓰레기봉투를 묶어 고양이 손이 닿지 않은 곳에 걸어둔다.   

캠핑장의 귀여운 침입자 고양이들!



산책이 메인이벤트

오전에 고양이가 해놓은 난장을 정리하고 나니 아점을 먹을 시간이다. 어제의 기대와는 달리 도통 앉아 있을 시간이 나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다 치우고 나니 금세 오후가 되버리다니! 어쩐지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만 같다. 오후엔 근처로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나에겐 이번 산책이 캠핑의 메인이벤트이다. 캠핑장 가까이에 금산공원이란 곳이 있는데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넓은 잔디가 펼쳐진 공원이 아닌 상록수가 가득한 나지막한 산이다. 무려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난대림지대이다. 캠핑장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금산공원에 도착한다. 들꽃이 한들거리는 큰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납읍 마을이 나오고 마을 안 납읍초등학교 앞에 공원이 있다. 입구의 계단을 조금 오르면 양쪽으로 정자가 있고 탐방로가 나무 데크로 잘 만들어져 있어 산책하기 어렵지 않다. 워낙 나무가 울창해서인지 어느 계절에 와도 어둑어둑하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바스락바스락 낙엽들 밟는 소리가 잘 들린다. 한 바퀴 휙 돌고 다시 입구 쪽 정자로 오니 납읍초등학교 학생들의 시화전을 볼 수 있었다. 백 프로 현실 반영인 시들을 보며 빵 터지기도 하고 가끔 시를 쓰던 어린 시절 나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금산공원의 반짝이는 나무들



보기 좋은 케이크가 먹기도 좋다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 이쪽에 오면 꼭 다시 방문해야지 했던 케이크집에 들렀다. 하얀 건물에 아담한 정원을 갖고 있는 요 케이크집은 그림책의 배경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쁘다. 가게를 처음 오픈한 지 얼마 안돼서 왔었는데 가게 인테리어도 맘에 들고 무엇보다 깔끔하니 예쁜 케이크에 반했었다. 하얀 크림 위에 꽃으로 장식한 케이크들이 어찌나 이쁘던지... 멀어서 자주 오지는 못하니 가끔 인스타에 들러 케이크 사진을 보기도 한다. 요즘 모든 식음료 값이 올라 케이크 한 조각이 밥 한 끼 값이긴 하지만 눈과 입이 충분히 행복하니 그걸로 됐다.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케이크 비주얼을 보며 몇 번을 포크를 댈까 말까 망설이다 한껏 푹 떠서 입에 넣으니 가볍게 퍼지는 달콤함에 첫 캠핑의 피곤함이 싹 달아나는 듯했다. 바로 그 순간만큼은...

쉬리니 케이크



변덕쟁이 제주날씨

나만의 캠핑 이벤트를 즐기고 오니 금세 밤이 찾아왔다. 변덕스러운 제주 날씨는 내일 새벽 거센 바람과 아침 비를 예고했다. 제주에 살면서 날씨에 좀 더 민감해졌는데 예보가 맞는 날도 있지만 안 맞는 날도 있으니 오늘 날씨에서 큰 변덕을 부리지 않길 바라며 잠들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제주의 바람은 밤새 텐트를 치고 또 치고... 처음 겪는 텐트 안에서의 바람 소리에 태풍이 온 것만 같았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어디론가 날아가지나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하며 이른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 그리고 아침, 후다닥 아침을 먹고 나니 부슬부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더 큰 비바람이 불기 전에 얼른 철수를 해야 했다. 언니는 이제껏 보지 못한 사이즈의 커다란 비닐봉지를 꺼내 주며 당장 텐트를 말릴 수 없으니 봉지에 싸가 집에 가서 말리라고 했다. 비가 오는 상황에 텐트는 어찌할지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구나! 두 대의 차에 짐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와이퍼를 최고로 올려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큰 비를 피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불장난이 재밌는 아들



이렇게 1년을 미뤄 온 우리의 첫 번째 캠핑이 끝났다. 한 번 해봐서 캠핑의 묘미나 장단점을 이야기하기 어렵겠으나 이건 알 수 있었다.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은 꼭 생길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리고 결정했다. 당근행이 예정된 장비들이 좀 아까우니 몇 번 더해보기로...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이제 개미지옥과 같은 쇼핑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못 앉아 있어도 불멍은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