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첫 한달살기 #3
이 얼마 만의 인천공항인가!
제주에 있으면서는 제주공항에서 직항이 있는 나라만 여행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제주공항에서 중국, 일본 직항과 그 외 다른 나라로 가는 전세기가 가끔 있었다. 인천공항은 거의 5년 만이다. 그리고 아들은 인천공항이 처음이다. 시골살이에 이렇게 큰 공간은 익숙하지 않은 아들은 이곳이 더 크게 느껴지겠지. 아들은 공항도 공항이지만 기내식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다. 내가 어렸을 적엔 비행기를 타 보는 거 자체가 뭔가 꿈같은 이야기였는데... 서울에 가족들을 보러 제주-김포행 비행기를 종종 타는 아들은 단거리가 아닌 6시간 가까이 되는 장거리 비행과 기내식이 궁금했나 보다. 기대에 찬 아들과는 달리 난 걱정이 앞섰다. 이전에 베트남 갈 때 저가항공사를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몇 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에어컨 때문에 건조한 공기가 너무 힘들었었다. 5시간 넘는 동안 아무리 동영상을 열심히 봐도 가지 않는 시간에 이번 비행에도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오후 1시 50분 아시아나를 타고
싱가포르로 향했다.
이전에 탔던 저가항공보다 넓기도 하고 미리 담요와 헤드셋이 세팅되어 있어 타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일단 다리를 움직일 공간이 있다는 것과 의자에 붙어 있는 화면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할 수 있으니 시간에 대한 걱정이 좀 가셨다. 그리고 계속 마스크를 하고 있는 게 답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건조함을 느끼지 않아 좋았다. 에어컨 바람도 막아주고 바이러스도 막아주고 어딜 가나 이젠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마스크. 급기야 마스크를 써야 안정감이 들다니 평생 마스크를 쓰고 살아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비행기가 떠오르고 한 시간쯤 지나니 드디어 아들이 기다린 기내식을 준다. 우리 자리를 기준으로 앞 뒤에서 승무원들이 카트를 끌고 오니 중간쯤 앉은 우리의 주문은 거의 마지막이 되었다. 치킨요리와 비빔밥이 있었는데 우린 셋 다 치킨요리를 주문했다. 하지만 막바지 주문이라 그런가 원하는 메뉴는 다 떨어지고 어쩔 수 없이 비빔밥을 먹게 되었다. 순간 아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들은 비빔밥을 정말 싫어한다. 채소를 안 좋아하는 데다 시금치와 깻잎을 특히 싫어하는 아들. 기내식 먹을 기대로 탄 비행기인데 잔뜩 실망감을 안은 채 꾸역꾸역 고추장을 넣지도 않은 채 먹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에선 몇 번이고 큰소리로 호통을 쳤지만 어른이 되어서 채소를 좋아하게 된 나를 생각하며 꾹 참는다. 게다가 가장 속이 상하고 실망한 건 아들 본인일 테니 말이다.
원래 비행기에서 이렇게 시간이 잘 갔나?
밥도 먹고 다운로드해 온 드라마를 보고 간식까지 먹고 나니 얼추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 이제 곧 착륙을 할 거라는 기내 방송이 나오고 창 밖으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에 가거나 착륙 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나에겐 그 나라의 첫인상이 되었다. 바다에 커다랗게 둥둥 떠 있는 불빛들. 비행기에서 수없이 많이 본 제주 바다와는 또 다른 풍경. 저 배는 무얼 하는 배일까? 고기잡이 배일까? 그렇다면 무얼 잡고 있을까? 아들과 함께 우리 바다와는 다른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작은 도시국가에는 어떤 나무가 있을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과 음식들이 있을까? 드디어 난 거의 20여 년을 써먹지 않은 중국어를 내뱉을 기회가 있을까? 기대와 궁금증을 가득 품은 채 싱가포르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