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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y 13. 2024

연잎을 품은 어머니

어머니의 눈빛에서 연잎의 기운을 읽었다

 아픈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보살펴 드리고 있다. 어제는 바람도 쐬게 해 드릴 겸 어머니에게 연꽃이 한창인 공원에 가보자고 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연꽃을 본 적이 없다며 설레는 표정으로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었다. 심장과 신장에 큰 병이 생긴 어머니는 기력이 없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그래도 연꽃을 보러 간다니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앞장을 섰다.


 공원 연못은 그야말로 연잎 천지였다. 수많은 연잎들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빼곡히 연못을 메우고 있었고, 그 틈을 비집고 여기저기 얼굴을 뾰족이 내민 연꽃들이 앙증맞게 피어 있었다. 한 공간에 있는 연꽃들이건만 어떤 것은 이제 막 봉오리를 맺었고, 어떤 것은 속까지 활짝 만개하였고, 어떤 것은 꽃잎이 다 떨어져 버린 뒤였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자 우리는 각자 우산을 받쳐 들고 걷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연잎과 연꽃이 가득한 연못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는 싱싱한 연잎과 곱디고운 연꽃의 자태에 연신 탄성을 지르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여름의 절정을 잠시라도 곁에 붙잡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사진을 찍던 카메라 화면 속으로 어머니가 들어왔다. 요즘 들어 부쩍 살이 내려 야위고 작아진 어머니는 허리에 힘이 없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곧 소멸해 버릴 것만 같은 어머니의 반영을 들여다보다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혼자서 조용히 울음을 삼켰다.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는 연꽃을 타고 인간 세상에 올라와 황후가 되었다. 연꽃은 죽음으로부터의 재생과 부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연꽃은 청결하고 고귀한 이미지 때문에 극락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연꽃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생의 부활을 꿈꾸었을까, 내세의 극락을 염원했을까? 육신이 머물고 있는 이승에서 한 발씩 멀어져 가고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자 깊은 슬픔이 소나기가 되어 가슴으로 쏟아졌다.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빗방울들이 연잎 안으로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더니 커다란 연잎 가운데로 모여들면서 작은 연못을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면 연잎도 참 고달프겠다.”

 “받을 때까지 다 받아내다가 한꺼번에 연못으로 쏟아내겠지.”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비를 맞으며 휘청거리면서도 아슬아슬하게 빗물을 받아내고 있는 연잎이 더욱 강인해 보였다. 연꽃은 개화 1일, 만개 2일, 낙화 1일로 보통 4일 동안만 꽃을 피운다고 한다. 아름다움의 절정을 향한 시간치고는 참으로 짧고 허무하지 않은가? 반면 투박하고 커다란 연잎은 햇빛에 마르고 바람에 흔들리고 빗물을 받아내면서도 한 여름을 무던히 버텨낸다. 연잎에서는 그야말로 싱싱한 생기와 푸르른 강인함이 샘솟는다.


 사람들이 연꽃을 보며 호들갑스럽게 탄복할 때 나는 조용히 연잎에 감동한다. 나흘 만에 지고 마는 연꽃을 안쓰럽게 쓰다듬어주는 다정한 손, 온몸으로 빗물을 받아내는 오래된 우물 같은 단단한 배, 물 한 방을 탐하지 않고 소중히 모으다 어느 날 어느 순간 한꺼번에 쏟아버리고 홀연히 빈손으로 되돌아가는 무욕(無慾), 빼곡히 자라나 한 치의 틈도 없이 연못을 뒤덮어버리는 가멸참, 연꽃의 화려한 잔치 뒤에서 소리 없이 제 할 일만 하는 수더분함! 연잎의 삶은 평범한 우리들의 삶처럼 수수하고 강인하되 정겹다.


 어머니 삶에서 꽃의 시간은 오래전에 끝났다. 반백년을 산 나의 꽃도 이미 낙화한 지 오래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의 대부분의 시간은 잎의 시간이었고 남은 삶도 그러할 것이다. 땡볕에 살이 타고 매서운 바람에 휘청거리고 빗물에 흠뻑 젖으면서도 하루하루를 그저 담담하게 살아가는 잎 말이다. 생의 절정을 탐하며 화려한 꽃으로 피고 지려하기보다 수많은 평범한 아무개가 되어 이파리로 나고 소박하게 죽어가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사람들은 연꽃의 화려한 개화에 감탄하고 허무한 낙화에 한숨짓느라 푸르디푸른 연잎들을 미처 보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눈빛에서 연잎의 기운을 읽었다. 생의 마지막을 강인하게 견뎌낼 인내와 연잎 같은 삶에 자족하며 생을 내려놓을 용기가 번뜩이는 것을 말이다.



* 이 글은 월간에세이에 수록된 글입니다. (2023. 12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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