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위 Jun 14. 2023

엄마, 배 고프면 밥을 더 먹어요

엄마의 건강염려증은 끝이 없다

"엄마는 아침마다 미치겠어. 배가 너무 고파서."

"밥은 먹었어?"

"밥을 먹어도 금세 다시 배가 고파. 이건 아주 이상해. 무슨 병에 걸린 거 같아."

" ..... "

"병원 의사한테 물어봤더니 뭐라는 줄 알아?"

"뭐라는데?

"배고프면 밥을 더 먹어 보래."

"맞는 말 아닌가?"

"의사가 약으로 고쳐줘야지 그게 뭐야."

"엄마가 요즘 힘들어서 살이 좀 빠졌잖아. 그래서 음식을 먹어도 자꾸 허기가 지나 봐."



얼마 전부터 엄마와 똑같은 대화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다. 아침이 되면 배가 너무 고프고 밥을 먹어도 금세 다시 배가 고파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 달 전엔 배가 아프고 속이 너무 안 좋다고 해서 응급실을 두 번이나 가지 않았던가. 이제 배가 아프지 않고 고프게 되었다면 다행인 일일 것인데..... 엄마에겐 엄마 몸에 나타나는 낱낱의 증상들이 하나같이 다 걱정거리일 뿐이다. 나로선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 '배고픈 것도 병인가요?' 하고 검색해 본다. 이런 걸 찾아보는 내가 요샛말로 웃프기 짝이 없다. 어라, 근데 정말로 나처럼 이런 걸 물어본 사람들이 또 있다. 어떤 의사가 답변을 달았는데 '감정적인 배고픔'은 정상적인 배고픔보다 극도로 강렬하여 그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혹시 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까?


엄마는 심장병을 앓으면서 밤에 잠을 잘 못 잔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정신과 약을 복용했었다. 하지만 이제 신장이 많이 나빠지자 정신과 약은 모두 끊은 상태이다. 엄마는 여전히 잠을 잘 못 자고 언제나 당신 몸에 대한 과민반응이 심각하다. 예전에 응급실에 갔을 때 담당의사는 모든 검사를 다 마친 후, 진지한 얼굴로 나와 엄마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병에 대한 과한 불안 장애가 있으신 거 같네요." 나는 순간 의사가 내게 보낸 그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환자가 아닌 보호자인 나를 안쓰러워하는 듯한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의사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지난달, 일주일마다 응급실에 달려갈 때에도 당장 죽을 거 같다고 해서 온갖 검사를 다 하고 나면 몸 상태는 그럭저럭 평소 그대로였고 병원에선 아무런 처치도 해주지 않은 채 내보내곤 했다. 배가 아프다 하니 위장약 정도를 처방해 준 게 전부였다. 배가 아프기 한 달 전 위 내시경도 했건만 속이 안 좋으니 그 짧은 사이에 암이라도 걸렸는지 걱정했다. 상식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건만 엄마는 그걸 정말로 두려워했다. 엄마는 기어이 내시경을 한 의사에게 "한 달만에도 암에 걸릴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고 의사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연세가 많으셔서 소화기의 기능이 둔해지고 느려지고 말을 잘 안 듣는 겁니다."  나는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론 허탈했다. 병원에선 괜찮다 하고 본인은 고통스럽다 하니 나는 조심스레 정신과 진료에 대해서도 말해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다. 그러고 나서 몸에 대한 하소연은 증상만 바뀌어가며 계속된다. 지난 한 달 배가 아팠던 엄마는 이번 달은 내내 배가 고프다고 운다. 어쩌란 말인가.


오죽 이해가 안 되면 그 큰 병원 의사가 '밥을 더 먹어보라고 했을까?'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제 며칠 후면 비뇨기과 CT 검사 결과도 나올 텐데.. 그 결과에 따라 엄마는 또 얼마나 많은 절망과 불안의 말들을 나에게 쏟아낼까. 몸의 이상보다 더 큰 문제는 본인 스스로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증상들을 죽음으로 연관시키는 '병적 불안'인 것이다. 엄마는 일주일, 혹은 이주일마다 대학 병원에 가서 온몸을 스캔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불안증 환자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이쯤 되니 엄마의 하소연은 어디까지가 위급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투정인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나는 지금까지 혼자서 많은 일들을 가장으로서 책임져왔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내겐 키워야 할 어린 아들이 있고 보살펴야 할(언제 병이 재발할지 모를) 남편도 있다. 언제까지고 엄마만을 내 아이처럼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나는 도저히 엄마의 하소연을 외면하기가 힘들다. 나는 오래도록 엄마를 걱정하고 보살피고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길들여져 온 착한 외동딸이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 사이는 아무리 헌신해도 부족함이 없는 관계일까? 내 살과 뼈를 갈아 부모를 봉양하는 게 마땅한 일이라고 한다면 엄마 때문에 힘겨워하는 나는 천하의 불효녀이다. 근데 그럼 부모는 자식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과 헌신은 양방향이어야 하지 않을까?

마흔이 된 외동딸이 우여곡절 끝에 자식을 하나 낳게 되었을 때, 출산일을 앞두고 엄마는 내게 전화해서 물었다.

"너 아이 낳는 날 엄마, 아빠가 꼭 가봐야 하냐?"

그때 내가 사는 곳과 친정은 불과 한 시간 거리였다. 임신 기간 나를 한 번도 챙겨 준 적 없는 건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 낳는데도 안 가면 안 되느냔 말에 나는 정말 태어나 처음으로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자식을 사랑할 줄 모르는 부모의 극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때의 일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품고만 있었다. 내가 그런 사랑 없는 부모의 자식이라는 것이 수치스러웠기에.


우리 부모님은 외동딸이 결혼할 때에 십 원 한 장도 쓰지 않았다. 뭘 바라서가 아니라 그냥 자식을 위해 작은 마음이라도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소한 것까지 다 내가 돈을 대 드리면서 결혼을 했다. 나에게 엄마, 아빠가 준 건 숟가락 한 개도 없었다. 엄마, 아빠는 마치 들러리처럼 내가 사주고 빌려준 옷을 입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그 역할은 끝이었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내가 만약 큰 병에 걸린다 한들 나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 엄마를 보살펴줄 사람이 없어진 처지를 더 한탄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헌신하며 살아왔어도 늘 내 앞에서 자식이 하나밖에 없어서 서럽다는 말을, 아들이 없어서 힘들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왔으니까. 하지만 정작 나는 아프거나 힘들 때 엄마의 간호나 도움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의 보호자여야 한다. 어쩐지 많이 불공평한 관계인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품고 있지만 그것으로 엄마를 공격하거나 아프게 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절대로.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딸로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받아들였다. 왜인지는 모르나 부모이기에 받아들이는 게 가능했다. 나에 대한 사랑이 많고 적음을 문제 삼지 않았다. 어쩌다 나를 생각해 주는 말 한마디에도 감동과 위안을 받으가난하기 짝이 없는 사랑을 붙들고 버텼다. 그리 하자고 마음먹으니 그리 되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나의 마음을 평생토록 피폐하게 만드는 엄마가 조금 밉기는 하다. 그리고 이런 나보다 더 지옥에서 살아가는 엄마가 한편으론 불쌍하다. 나는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끝없이 베풀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서럽고 서운한 마음은 있어도 더 이상의 회한은 없다. 받아보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갈구도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사랑을 받기만 했던 혹은 받으려고만 는 사람들은 끝없이 허기진 것이다. 그 영혼의 허기는 도무지 채울 길이 없는 것이.  


엄마가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 편하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벌벌 떨지 말고 의연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엄마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고 이건 그냥 나 혼자만의 바람일 뿐이다.


모르겠다. 엄마가 먹어도 배가 고픈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의사 말대로


'엄마, 배 고프면 밥을 더 먹어요.'


출처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