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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Jun 10. 2023

엄마의 친구들이 죽는다

죽음을 기다리는 공포

"OO이 엄마, 이번에 죽었어."

"응? 언제?"

"얼마 안 됐어."

"한 달 전만 해도 살아계셨잖아."


엄마의 친구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신다.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두 분 다 살아생전에 엄마보다 건강하셨던 분들이다. 엄마는 십 년 가까이 심장병으로 투병하면서 생사를 오간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생을 버텨내고 계신다. 하지만 돌아가신 분들은 병을 알게 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두 분 다 말기암이었다고 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인생사이고 사람의 목숨인 것이다.


엄마의 마음은 어떠할까. 문득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앞서 나간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의 차례를 기다리는 두려움과 공포. 지금 엄마는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오징어 게임'과 같은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곁에 있던 이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망연자실하지켜보면서 말이다.


엄마는 지금 외롭다. 언젠가 나도 엄마와 똑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아니 누구랄 것 없이 인간은 내가 먼저 죽지 않는 이상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진작에 돌아가셨고 엄마의 이복 오빠들도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엄마에게는 세 명의 남동생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건강이 안 좋았다. 띠 동갑인 막냇동생 한 명만 빼놓고 두 외삼촌들 다 일찍 돌아가셨다. 그리고 엄마의 남편이자 나의 아빠도 4년 전에 돌아가셨다. 10여 년을 키우던 강아지도 수년 전에 죽었다. 이제 엄마 곁에는 외동딸인 나와 막냇동생 둘 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 피붙이들을 다 잃고 마음으로 의지하며 지내던 친구들조차 이렇게 하나 둘 떠나고 있다. 그것도 너무 빠른 속도로....


출처  Pixabay


"엄마는 이제 어느 날 갑자기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 너도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라."


요즘 들어 건강이 부쩍  안 좋아진 엄마는 저승사자가 언제 당신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며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아직 심각하지 않은 상태인데 지레 죽음 먼저 생각하는 엄마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딸에게 그런 공포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나약한 엄마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엄마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구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오늘 당장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사고일 뿐 그 일을 당하기 전까지 우리는 평온한 일상을 누린다. 죽음을 앞둔 기분을 느끼지 못한 채로 죽음 먼저 맞이하게 되는 것이. 그럼 실제로 죽음을 준비하는 건 어떤 경우일까? 아마도 불치병에 걸렸거나 노화가 아주 심해졌을 경우일 것이다. 몸의 기능에 하나씩 문제가 생기면서 스스로 저물어가는 생명의 기운을 감지할 때가 되어서 우리는 죽음을 몸으로 예감할 수 있는 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엄마의 마음을 추측만 할 뿐 제대로 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두 번의 시술에도 재발한 심장병, 20프로밖에 남지 않은 신장, 그리고 또 다른 장기에 문제가 생겨 CT를 찍고 기다리는 상황 속에서 엄마는 당연히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 와중에 몇 달 사이에 두 명의 친구들이 연달아 죽는 것을 보았으니 엄마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엄마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다. 엄마의 일방적인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은 할 수 있어도 내 입에선 어떤 말도 나오지가 않는다. 죽지 않을 거라는 희망도 죽을 거라는 절망도 함부로 내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목숨에 엄마의 지분이 있듯, 엄마의 목숨에도 나의 지분은 있다.  권리이자 책임의 형태로... 그래서인지 엄마와 대놓고 공유할 수 없는 것이 죽음에 대한 문제이다. 오히려 조금 덜 아프실 때는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애써 외면하지 않아도 죽음을 남일처럼 이야기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툭하고 부러지거나 터질 것만 같아서 도저히 입도 떼지 못하겠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있고 엄마 곁에 있던 분들은 하나씩 떠날 것이고 엄마 역시 한 걸음씩 죽음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 거역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나는 오늘도 전화를 건다.


"엄마, 밥 먹었어? 잠은 잘 잤어?"


나는 언제까지고 엄마의 먹고 자고 싸는 일에  대해서만 물을 것이다. 굳이 미리부터 죽음에 대해 말로 하지 않아도 그것이 눈앞에 닥쳤을 때 우리는 둘 다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니까. 지금 엄마의 두려움과 공포를 달래주는 건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순한 귀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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