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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야 May 31. 2019

고깃집 알바인 내가 제일 부러워했던 사람은 '손님'

15년 전 24살의 나를 추억하며, 오늘 메뉴는 돼지갈비다.

 군대를 제대한 2005, 복학을 앞두고 가장 만만하게 찾을  있던 아르바이트 자리는 갈빗집이었다. 종각역 먹자골목 중간에 있는 꽤나 유명한 집이었는데, 군대 가기 전부터 홀 서빙과 주방 보조를 전전한 나의 스펙으로는 손쉽게 면접에 합격할  있게 되어,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을   있었다.


 오후 5시까지 갈빗집에 출근을 하여 저녁 손님들을 해치워야 했는데, 끝나는 시간은 보통  손님들이 헤롱헤롱 하며 서로 택시를 잡아주던  새벽 1,2시였다. 

 일상은 이랬다. 오후 6시 정도가 되면 오랜만에 종로로 외출을 나온 또래 친구들부터 법카를  부장님을 앞세운 광화문 일대의 직장인 부대들까지 몰려왔는데, 손님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으면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라는 인사와 동시에 분명히 마시지도 않을 물을 담은 플라스틱 투명 물병과 쇠 컵, 돌돌 말린 일회용 물티슈를 인원수에 맞게 들고 동그란 대포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주문을 받는다.

 

 식당의 메인 메뉴는 간장 양념 갈비/고추장양념갈비/생삼겹 이렇게 크게 3가지였는데, 갈비는 숯불을 세팅하고 그물망 판을 준비하면 됐고, 삼겹살의 경우는 부르스타라고 부르던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기름을 받을 수 있게 비스듬하게 놓을 수 있는 검은 돌판을 준비해준다. 기본으로 세팅되는 반찬은 감자를 으깨 만든 샐러드와 김치, 그리고 파셰리 라고 불리는 파 무침, 그리고 동치미였고, 이들과 함께 쌈장과 마늘을 담아주던 8자 모양으로 된 작은 종지를 함께 놓아준다. 3인이 앉으면 그들 앞에 놔야 할 기본 앞접시들로만 이미 테이블은 가득 찼고, 나는 왜 이렇게 갈빗집 테이블은 크기가 작을까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여하튼, 손님이 없을 땐 빠르게 세팅을 할 수 있게 빈 앞 접시들에 담아야 할 반찬들의 일정 양을 담아 차곡차곡 쌓아두곤 했다.

 

 가게 밖의 작은 아궁이에서 숯을 달구고 있는 (내부 용어로는 숯친다,라고 했던 것 같다) 사장님의 아들 분께 여기 2분 갈비요,라고 외쳐주면 사장 아들은 "불 들어가요"라는 소리와 함께 숯을 놓아주고, 그 위에 나는 고기 구을 판이며 각종 위에 언급한 세팅을 착착 준비해준다.

 

 고기는 사장님이 직접 저울에 달아 '여기 2인분' 하고 내어주곤 했는데, 언제나 "오늘 많이 드린 거라고 해"라고 말을 하곤 했다. 내가 봤을 땐 '헉 저게 3만원 어치란 말이야?' 할 정도의 양이었지만 손님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간장 양념이건 고추장 양념이건 고기에 설탕 양념이 되어 있으면 으레 금방 타기 마련이다. 셀프서비스가 없던 그 가게에서는 최대한 알바생들이 손님 테이블 옆에 붙어서 고기를 얹어주고 타지 않게 잘 구운 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 뒤에야 테이블에서 물러난다.

 

 물론 한번 구워주고 테이블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그 테이블의 서비스가 끝난 것은 아니다. "여기요, 여기 김치 좀", "여기요, 판좀 갈아주세요" "여기요, 소주 하나 더 주시고요" 신기한 것은 손님들은 절대 자기들이 필요한 것들을 한 번에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쪼르르 테이블 앞으로 가면 쌈장을 달라고 했다가, 쌈장을 들고 가면 그리고 저희요 깻잎도 주세요 했다가 깻잎을 들고 가면 또 판을 갈아달라고 한다. "여기요, 판 한번 갈아주시고요 깻잎이랑 쌈장 좀 더 주세요"라고 말하는 손님은 열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다. 그래서 나는 서른여덟 먹은 지금, 고깃집에 가면 한번 우리 테이블에 왕림한 알바생에게 가급적 친절하게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한 번에 얘기해준다. 그리고 한마디 꼭 덧붙인다. "천천히 해주세요"

 

 여하튼, 약 서른 개의 테이블을 알바 대여섯 명이 마킹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런 정신없는 와중에 우리를 패닉에 빠지게 하는 것은 바로 '회식 손님'이다.

 

 회식 팀이 오면 누가 부장인지 누가 신입이고 누가 팀 안에서 입김이 센지 척 보면 알 수 있다. 조용히 한쪽에서 고기만 굽는 사람, 그동안 쌓인 게 뭐 그리 많은지 벌겋게 취한 채로 옆 사람에게 하소연하는 사람, 고기를 먹으면서 까지 넥타이를 맨 배불뚝이 아저씨한테 혼나는 사람, 그리고 주변 손님들을 의식하지 않은 채 건배사를 하라고 시키는 부장까지.

 

 그들은 경쟁하듯이 저기요 여기요 죄송한데요 사장님 잠깐만요 하며 알바들에게 포격을 가한다. 주문서는 누군가가 깔고 앉았는지 물에 젖었는지, 주문받을 때마다 해당 메뉴에 바를 정 正 자를 또박또박 표기해야 하는 우리를 당황시킨다.

 

 소주 한 짝 이상을 비우고서야 그들은 일어서는데  부장님 만세, 우리 팀 만세를 외치며 서로 부축을 해주며 나가는 그들의 뒤로, 폐허로 변한듯한 그 자리 앞에서 걸레와 휴지통을 든 우리 알바들은 언제나 망연자실했다. 왜 꼭 그들 중에 한 명은 물컵을 쏟았는지, 방석 중에 하나는 반드시 소주로 젖어있고 수저통은 열어 논 채로 고기를 구워 수저통 안의 수저에 기름이 죄다 묻어 있다.

 

 회식 팀과 전쟁을 치른 후 나의 체감 시간은 오후 11시가 넘었으리라, 하고 시계를 보면 아직도 10시도 되지 않았다.

이제는 2차로 껍데기를 먹으러 오는 팀들을 맞이해야 한다.

 

 2005년 당시 시급 2700원을 받으며 그곳에서 지옥 같은 7시간을 보내던 나는, 넥타이를 왼쪽 주머니에 꾸겨 넣은 채로 메뉴판 오른쪽의 가격은 보지도 않고 왼쪽의 메뉴들만 보고 주문을 하던 그들의 경제력-약 5만 원이 넘는 거액을 서로 내겠다고 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신용카드도 없던 스물네 살의 내가 봤을 땐, 수중에 10만 원이 넘게 있다는 사실도 부러웠고, 알바를 하지 않고 향유할 수 있는 저녁의 서너 시간이 있다는 것도 너무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당장은 저들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 있게 먹는 저 노릇노릇 한 간장 양념갈비와 몽글몽글 따뜻한 계란찜도, 입가심으로 먹는 시원한 국수가 나도 너무 먹고 싶었다.

 

 손님들이 물러나고 난 뒤, 불판 위에 젓가락이 닿지 않은 채 남은 고기들은 사장 사모님의 명령으로 따로 모아놨다. 그것들은 저녁 11시 넘어서 우리에게 제공되는 막 찌개(이것저것 때려 넣은 고기찌개)의 재료로 쓰였는데, 그마저도 너무 맛있어서 차라리 손님들이 갈비를 많이 남겼으면 했던 마음도 있었다.

 어쨌든 이래저래 자정이 지나 1시가 되면 그때부터는 가게 뒷정리를 했는데, 하루에 50리터 쓰레기봉투 하나에 어떻게 해서든 쓰레기를 압축해서 담아야 했다. 손님들이 남긴 쓰레기가 정해진 양보다 많이 나오는 것도 우리의 책임인 거 마냥, 우리는 열심히 휴지통에 물을 부어가며 휴지를 압축해서 버렸고, 봉투가 묶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차면 손으로 봉투가 찢어지지 않을 만큼씩 옆으로 쫙쫙 늘리고 그것도 모자라 넘쳐나는 쓰레기들을 박스테이프로 눌러 붙여 어쨌든 하나의 봉투에 담기게 만들었다.

 빈 병과 쓰레기를 모두 치운 후에는 남은 소주들을 분무기에 넣어 테이블에 칙칙 뿌려가며 굳어 버린 고추장 양념과 기름때 김치 국물 따위들을 닦아내고, 홀에 최소 정리 인원만 남겨둔 채 모두 주방 한쪽에 모여 저녁내 수거된 불판들을 닦기 시작했다. 물에 불려 놓는다고 불려놨던 불판들이지만 정말 어지간히 닦기 힘들었고, 이 과업들을 마친 우리의 손은 도저히 닦이지 않는 기름기로 코팅이 되어, 그 감촉이 여간 불쾌한 게 아니었다.

 

 '자 이제 집에들 가자'며 한편으로는 돈을 세고 있는 사장 아들의 외침이 들리면 정말 너무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면 내 양말은 갖다 버리고 싶을 만큼 바닥에서 묻은 기름때에 절어 있었고, 옷가지 역시 지지 않는 기름때가 가득했다. 교통비 지원도 없이 그날 일당의 30%가량을 투자하여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3시 남짓, 그렇게 나의 하루는 갔고, 다음날 점심때가 돼서야 가까스로 일어나곤 했다. 점심 이후에 빼앗긴 나의 자유를 만끽이라도 하듯 PC방 당구장에서 게임을 한두 판 하다 보면 어느덧 오후 4시, 다시 또 갈빗집으로 발걸음을 향하던 그 후텁지근하던 나의 스물넷 여름날.

 

 그 시절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그 갈빗집의 손님이 지금의 나는 얼마든지 될 수 있다.

나는 어지간하면 내가 고기를 굽고, 필요한 게 있으면 한 번에 이야기한다. 다 먹고 난 후에는 얼추 그릇을 모아주고, 가볍게 쓰레기를 한쪽에 정리해주고 나온다.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십오 년 전의 나에게 주는 작은 위로랄까, 아니면 같잖게 누리고픈 알량한 배려랄까. 여하튼 나름 최대한 매너 있고 존재감 없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나온다.

 

오늘, 유난히 간장 양념이 된 돼지갈비에 껍데기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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