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 4월 초 벚꽃엔딩이 흘러나오는 나들이 시즌은 길어야 이제 2주 남짓이다. 벚꽃이 활짝 핀 그 기간에 비바람이라도 불어 저 약한 벚꽃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건 아닌가 노심초사하며 짧게 허락된 봄을 어떻게 해서든 오래 붙잡고 싶다. 겨우내 입었던 코트와 점퍼를 정리하고 복장이 가벼워지면, 어느새 시원한 하복 교복을 갈아입던 5월이 온다.
5월은 푸르른 달, 계절의 여왕.
내 기억 속 유년시절의 5월과 6월은 그야말로 푸르름, 상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차지도 덥지도 않은 그야말로 상큼하고 선선한, 하늘은 또 얼마나 쾌청했나.
마흔도 안된 나의 기억 속 봄은 이렇게 선명한데,
머리가 큰 다음의 봄은 온통 미세먼지다. 미세먼지 지옥 속에서 불볕더위가 찾아온다. 불볕더위 속에서도 그늘 밑 돗자리에 마음 놓고 앉아있을 수 없는 요즘이다.
80년대 서울, 하늘이 정말 파랗다. 원래 하늘을 파랬었다.
관측의 시작은 도대체 언제였는지, 매년 관측 이래 최대치 뉴스가 나오며 지겹게 덥다. 문도 못 열어 놓을 만큼 더운 계절이 넉 달은 지나야 비로소 추석 냄새가 나고 가을이 오나 싶다. 가을은 그야말로 잠시 우리에게 더위가 끝났음을 알리기만 할 뿐, 곧바로 또 겨울이 찾아온다.
우기와 건기처럼 우리나라도 이제 동절기 하절기만 있는 느낌이다. 짧은 기간 허락된 푸르른 봄과 쾌청한 가을은 점점 그 기간이 짧아지고, 그 짧은 기간에도 예전 같은 쾌적함이 없다.
매년 우리에게 돌아오던 짧지만 분명히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그 춘추(春秋)가, 이제는 정말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짧게만 다가온다.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느껴진다.
2019년 5월 중순, 이미 30도를 육박하는 날씨가 되었고, 여전히 창문은 못 열고 있는 갑갑한 더위가 시작되었다. 아련하고 붙잡고 싶은 봄은, 내년에 온다는 기약이 없다. 아니 당장 올 가을은 또 얼마나 짧게 허락될 것인가 벌써 마음이 안쓰럽다.
이제, 사라진 그 모든 좋은 것들을 대신하는 단어가 될까 두렵다.
30년 후, 춘추가 존재했었는지도 모르는 세대가 분명히 나타나고, 우리는 여전히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아프고 아련하게 우리의 봄가을을 추억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