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신혼 초,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 후로
정말 몇 년간 미친듯이 해외로 출장을 밥 먹듯 다녔어요.
그것도 출장 가면 한 달은 기본, 서너달에서 반 년 짜리 출장도 많았고
그러면 저는 홀로 시댁에서 아직 영유아인 아이들과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야 하는 결혼기념일을 꽤나 많이 보냈습니다.
그러면 출장이 다 끝나고 나서야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온갖 선물보따리를 하사 받곤 했었어요.
그러다보니 어쩌다가 함께 보낼 수 있는 결혼기념일이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었지요.
결혼 17년차가 되었고
나름 출장이 잦았던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저희 부부가 남달리 사이가 좋아서 깨가 쏟아져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아주 무난하고, 또 그렇게 예뻐보이고, 친구같고, 연인같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둘 다 극 실리주의자인 편이어서 그런지
세월에 조금 더 무던해진 탓인지
생일도, 결혼기념일도 꼭 챙겨야만 하는 것_에서 자유로워졌고
오히려 평소에 각자 챙기고 싶을때 뜬금없이 챙기기는 합니다.
결혼기념일이었던 지난주,
남편 회사에서 오래도록 준비한 서비스 오픈을 앞두고
그 주 내내 꼴딱 밤을 새다시피 한 건넛방박씨.
결혼기념일이라고 다를 건 없었습니다.
생업이 중요하죠.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길래 궁금해서 연락해봤더니
다행히 일이 치여 허덕이고 있을지언정 기절하진 않고 전화는 잘 받더라고요.
(너무 잠 못자서 기절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긴 했습니다.)
“살아있구나~다행이다. 결혼기념일 축하해~
나랑 17년 사느라고 고생이 많어어~~“
“아유~자기도 축하해~17년간 우리 그래도 잘 살았네
오늘같은 날 일 때문에 같이 못 있어줘서 미안해~“
“그래도 전화는 받네엥~~
전화 안 받으면 기절한 줄 알구 이 밤중에라도 회사에 가보려고 했지이~
오래살어~~죽으면 안디야~~너무 일찍 가면 나 재혼할거여 연하랑~~
알고 있지? 이거 진담이야~~^^“
“그러엄~내가 우리 마누라두고 어떻게 죽겠어어~
숨이 꼴딱 넘어가도 관뚜껑 열고 일어나야지이~
그리고 죽더라도 재혼 못하게 악령이 되서 쫓아다닐거여~
연하는 꿈도 꾸지 말어어~~^^“
열한 살 차이가 나는 결혼 17년차 부부는
그렇게 서로 진심이 가득 담긴 축사를 건네며 아주 훈훈하고 평화롭고 별 거 없이 결혼기념일 잘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저도 남편도 둘 다 진심일겁니다 하하하.
(둘 다 대문자 T 입니다….ㅋㅋ)
그런데 그거 알까요?
20주년에는 저 꼭 인도 갈건데 말입니다…후후
준비해 딱 기다려 건넛방박씨야
3년 남았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