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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환 Jan 29. 2023

감각을 장악하는 초록빛 최면치료

힙노시스 테라피 < HYPNOSIS THERAPY > (2022)

덩치만큼이나 좋은 먹성을 가진 전자 음악과 힙합은 타 장르와의 무자비한 교배를 기반으로 세력을 부풀려 왔다. 그만큼 둘의 조합인 '일렉트로닉 힙합'은 수식만으로도 막대한 범용성을 자랑한다.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결과물을 가늠하기 어렵고, 경계에 갇히지 않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2015년 < 물질보다정신 >으로 평단의 찬사를 이끈 '와비사비룸'의 멤버, 짱유와 제이플로우가 새로운 프로젝트 힙노시스 테라피의 출격을 알린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를 소환하는 인스트루멘탈 '2002 KOREA'부터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대한민국의 회복을 위한 초록빛 최면 치료. 뇌쇄적인 저주파 자극과 역동적인 심장 제세동이 차례로 행해진다. 점차 마취액이 혈관을 타고 흐른다. 당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비로소 모든 감각을 장악하는 물아일체의 현장, '레이브'로의 입장이다.


이들에게 스웩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다. 누가 더 플로어에서 상대를 신나게 하고 춤추게 하는지의 도취다. 반복적인 박자감은 트랜스(Trance) 작용을, 묵직한 베이스는 클럽의 정서를 가져온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능숙한 사운드 터치다. 몽환적 작풍으로 개인 서사를 그린 짱유의 < KOKI7 >과 차분하고 정교한 배경이 돋보인 히피는 집시였다의 프로듀서, 제이플로우의 집도 감각은 유로 댄스와 테크노, 레이지, 퓨처 레이브와 앰비언트, 다양한 수술 도구를 통해 한 차례 발전을 거둔다.


좌 : 짱유 / 우 : 제이플로우(Jflow)


오랜 호흡은 플레이어와 비트 메이커의 이해관계로 나타난다. 뭉툭한 박자 사이로 보컬 샘플을 촘촘하게 쪼갠 'BENZ'는 짱유 특유의 혈기왕성한 래핑을 재료로 한 봉합 현장이다. 반면 빠른 스포큰 워드 기법의 'WIKIPEDIA'는 비트를 후방에 배치해 등장하는 가사에 집중하게 만들고, 부가 요소를 깔끔히 걷어내어 보컬의 멜로디를 부각한 'HIGHWAY'는 일종의 쿨링 구간을 마련한다.


캐치한 훅과 완급으로 감칠맛을 자아내는 '+82'와 분열적인 랩으로 강력한 기조를 이어가는 'DAZE'는 일당백으로 주인공 역할을 수행하는 짱유의 캐릭터성을 살린 사례다. 고양감을 자극하는 고감도 비트부터 삶을 예찬하며 이 행진에 동참을 요구하는 동물적인 랩 모두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적어도 이 앨범에서 우울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작업물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 돋보인다. 요근래 일렉트로니카를 접목한 익스페리멘탈 힙합의 수요층이 느는 추세라지만, 이토록 노골적으로 본질에 접근한 앨범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주목받는 디제이 듀오 살라만다(Salamanda)와 프랭크, 디제이 코커가 참여한 리믹스 앨범까지 발표하며 로컬과의 결합까지 노린 이들의 진취적 행보는 현상의 제시를 넘어 로컬 신과의 용접을 도모한다. 아직 구상 단계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서로의 시너지와 틈새시장을 파악한 듀오의 무서움, 오금까지 저리다.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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