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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현 Mar 31. 2022

가이드 어머님과 함께한 히메지 성 데이트

세 번째 기록

2018/01/23

새벽 일찍 눈이 떠진다. 개운하지 못하고 계속 피곤하다. 어제 하루 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녀서 그런 듯하다. 어떻게든 다시 자려했지만, 1시간 동안 뒤척이기만 할 뿐이었다. 다시 자는 건 포기하고 그렇게 휴대폰을 만지다 일어났다. 호스텔 로비로 나와 밀린 어제의 일지를 쓰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아침 10시가 되니깐 배가 슬슬 고프기 시작한다. 허기만 후딱 채우고 싶었다.  숙소 옆에 구로몬이라는 시장이 있었다. 시장에는 저렴한 음식이 많으니 가봐야겠다. 구로몬 시장 안에 있는 푸드코트를 찾았다. 야끼소바와 김밥을 2000엔도 안되는 가격에 먹었다. 여기 호스텔이 있는 동안  시장을 자주 와야겠다.

구로몬 시장

고등학교 때 오사카와 근교를 수학여행 온 적 있었다. 갔던 곳 중 히메지 성이 가장 기억에 남았었다. 그래서 다시 가기로 결정했다. 나갈 채비를 마치니 12시가 되었다. 구글맵으로 가는 길을 알아봤다. 여기서 히메지 성까지 2시간이 걸린다. 우메다역(오사카 기차들의 중심인 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그곳에서 JR로 히메지역까지 가야 한다.

오늘 갈 히메지성

우메다역은 컸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히메지로 가는 전철을 찾았다. 자리에 앉고 10분 정도가 지나니 전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창문으로 풍경을 내다보았다.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집들과, 일본인들의 일상이 인상적이다.

이런 느낌의 집들이 즐비했다.

역에서 내리니 히메지 성이 바로 보였다.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플에 나온대로 버스를 탔다.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 한번 덜컹거렸다. 어깨에 맨 카메라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렌즈를 보호해주는 필터가 깨져버렸다. 유리 재질이라 위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얼른 주워서 가방에 넣었다. 2분 정도가 지났을까? 히메지 성 앞에 버스는 멈춰 섰다. 괜히 돈만 날렸다. 돌아올 때는 걸어가야겠다.

히메지성 입구

티켓을 끊고 입구로 들어갔다.

'히메지 성 한국어로 무료로 가이드해드립니다.'

키가 작으신 중년의 아주머니께서 한국어로 쓰인 종이를 들고 서있었다. 나는 그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히메지성 구석구석

"저기 이거 왜 하시는 거예요?"

"죠는 간코쿠을 죤말로 사란하므니다. 본사활돈을 하는 거이므니다.(저는 한국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봉사활동을 하는 거입니다.")

일본인이 한국어를 하는 특유의 발음이었지만, 굉장히 한국어를 잘하셨다. 왠지 믿을만해서 내게 가이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주머니께서는 정말로 좋아하신다.

히메지성 구석구석

"죠는(저는) 한쿡어 가이드하는 게 처음이므니다.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리므니다."

아주머니의 가이드에 맞춰 성을 돌아보는데 한국인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내가 처음인가 보다.

히메지성


가이드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한국말을 잘하시고, 설명도 알아듣기 쉽게 해주셨다. 가끔 어려운 말은 막히셨지만, 그때마다 수줍어하시는 모습이 귀여우셨다.

가이드 어머님이 찍어주신 사진

"아니 그런데 한국어 왜 배우신 거예요? 정말 잘하세요.

"아노 죠는 배욘준니므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쿸어 배웠습니다. 잘한다고 해주시니깐 간사하므니다."

아주머니께선 일본인 특유의 겸손이 담긴 억양으로 대답해주셨다. 아주머니와 함께 구경하니 혼자 봤으면 놓쳤을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이럴 때마다 난 복 받은 사람인 것 같다.

가이드 어머님과 한 컷


열람시간이 끝날 때까지 히메지 성을 눈에 담았다. 아주머니의 가이드는 마치 엄마와의 데이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편안하면서 푸근했다. 아주머니께서는 성 옆에 예전에 성주가 만들었다는 정원에 가보라고 했다. 길을 모른다고 하니 그곳까지 바래다줬다. 아주머니 집으로 가는 버스가 반대편 길에서 오고 있었다.

정원 구석구석

"버스가 오고 이스므니다. 죠는 가야게써요. 재밌게 정원 보세요!

아주머니께선 그 버스를 놓칠까봐 허겁지겁 뛰어가셨다.

정원 구석구석
정원 구석구석

정원은 히메지 성보다 30분 더 열었다. 살짝 훑어보고 히메지역으로 걸어갔다.

히메지 도시의 가게들

5시가 조금 넘으니 해가 히메지 성 뒤로 뉘엇뉘엇 지고 있었다. 나의 눈으로 보이는 그 장면 속에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들어왔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볼듯한 모습들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웠던 해질녘 히메지성
돌아오는 길에 봤던 시바이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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