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에서 느낀 것
부모님 집을 떠나 독립생활을 한 지 18년이 넘은 거 같다
혼자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이 생활에 익숙해져서
나도 모르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 시기부터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가 허용되었고,
나의 매니저는 곧 호주에 있는 외국인으로 바뀌었다.
매니저가 한국에 없으니
그녀는 우리에게 주 5일 재택도 가능하게 해 주었고,
자연스럽게 집에 혼자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4년 넘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아직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고?
그것도 원할 때만 사무실 나간다고?"
라며 그런 회사가 다 있냐고
부러워했다.
처음엔 장기간 해보는 재택근무가 신나서
강원도 고성에 가서 며칠 묵으며 일해 보기도 했다.
부모님 집에 내려가 몇 주씩 지내기도 했다.
그땐 정말 좋았다.
그러나 재택근무가 4년 차가 되자
'혼자 일하는 거 너무 싫어..'라고 말할 정도로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계속 혼자 컴퓨터 앞에 있다 보면
혼자 중얼중얼거리게도 되고
하루종일 집 밖에 안 나가다가
억지로 나가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러면 회사에 출근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묻겠지만,
막상 재택근무가 가능한 상황에서
회사 나가는 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마음은 사무실에 가 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나만의 의지로는
매일 습관처럼 베인 재택근무의 편안함을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굳이 머리 감고 샤워하고,
머리 말리고 화장하고 옷을 입는데
1시간 정도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면
출근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계속 재택근무를 하던 중
회사에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 특수를 누리던 회사가
코로나가 끝나면서
매출이 하락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 때 공장을 신설하고
신규채용했던 인원을
정리해야 했다.
임원진에도 변화가 생겼고
새로 부임한 중국인 임원은 재택근무에
회의적이었다.
"솔직히 너희가 집에서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알아?"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사무직에 한해 주 1회 재택근무는 가능하게 되었고,
지금은 주 1회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집에서 일하는 게 정말 지겨웠지만,
주 1회만 하게 오히려 꿀맛같이 느껴진다.
매주 금요일은 재택근무를 하는 날로 정해놓았다.
어제는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
빨래도 돌리고 널고,
화장도 안 하고
편하게 컴퓨터를 켜고 일을 했다.
문득 재택근무가 이렇게 좋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엄청난 자유가 있을 때는
오히려 그 자유의 행복을 계속 느끼지 못했지만,
단 하루의 재택근무에 행복함이 느껴진다.
내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자유였다면
더 행복했을 것 같다.
무방비상태로 자유에 노출된 채
오히려 무기력함을 느꼈던 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