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나는 넉넉치 못했던 가정 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 예체능 등의 사교육은 꿈도 꾸지 못할 환경에서 자랐다. 당시 나는 부러움을 감추느라 피아노를 배우는 또래 친구 아이들이 교실에서 오르간을 치며 놀고 있어도 애써 무심한 척, 관심없는 척, 외면하고 눈 돌리곤 했다.
어린 시절 나의 이런 결핍은 내가 딸 아이를 키우면서 악기를 배우게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아트 스튜디오에 보내는 등 이른바 예체능 뺑뺑이를 시키며 대리 만족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제법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게 들릴만할 때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내게 딸아이가 악을 쓰듯 눈물을 쏟으며 피아노 선생님을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미국에서는 엄격하게 체벌이 금지돼있어 한국에서 어느 정도 묵인되는 사랑의 매도 경찰에 고발되면 당장 부모와 자녀가 격리된다.)
눈물을 쏟으며 사자후를 쏟아내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이유를 물어보니 피아노 선생님이 자신의 손등을 ‘자’로 때렸다는 것이다. 일단 피아노 선생님과 통화를 시도했다. “어머님, 샐리가 연습해놓으라고 한 숙제를 안해놓아서 자로 손등을 몇 번 살짝살짝 친 것뿐이에요”
한국식 교육방법으로 피아노를 가르쳤던 선생님과 미국 학교에서 교육 방법에 길들여져 있던 딸애의 갈등이 폭발한 것일게다. 난 딸 아이에게 계속 피아노를 배우고는 싶은지 의견을 물었다. 울음을 그친 딸애는 “미국 선생님이 가르치는 피아노 학원으로 바꿔주면 계속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며 단호하게 그 선생님과 선을 그었다.
할 수 없지 . 그 다음 날 동네 미국 선생님이 가르치는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했다. 제법 체르니 30번까지 치던 딸아이가 그 미국 학원에서는 갑자기 딩동댕동을 다시 시작하더니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도 맨날 똑같은 곡으로 딩동댕동…
난 갑자기 속에서 ‘욱’ 화가 치밀어 오르며 이러자고 학원에 또박또박 돈을 갖다 받치나? 하는 분노에 휩싸였다. 아시안이라고 이것들이 신경을 안써주나? 별의별 생각까지 맨날 소설을 쓰며 오늘은 선생을 찾아가리라… 내일은 당장 끊으리라… 속을 달달 볶아댔다. 6개월 정도 지나자 마침내 딸 아이가 피아노에 흥미를 잃었는지 “다른 악기 배우고 싶어. 피아노 학원 더 다니지 않아도 돼?” 라는 말을 하기 무섭게 ‘그래 잘 됐다.’ 얼른 학원을 그만 두겠다고 통보를 했다.
아트 스튜디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주일에 한번 가는 아트 스튜디오에서는 동일한 그림을 한 달 동안 그렸다. 도대체 그림은 언제 일취월장 하는건가? 내 마음은 늘 조급했고 다달히 나가는 아이의 예체능 학원비에 비해 늘지 않는 실력을 바라보며 재능이 없는건가? 조바심을 내기 일쑤였다. 한 2년 정도 아트 스튜디오를 다니던 딸 아이가 몇 달 째 동일한 그림을 그리며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또 ‘욱’이 솟구쳐 오르며 결국 이 마저도 그만두고 말았다.
이후 아이와 나는 아이의 극심한 사춘기를 거치면서 매우 친밀하지 않은 다소 형식적인 모녀 관계를 유지하다가도 어느 날은 또 관계가 잘 연결되는 순간을 맞기도 하는 등 복잡미묘한 모녀관계로 어정쩡하게 살아오고 있다.
약 3년전인가? 아이가 아이패드로 그려진 일러스트 4컷 삽화를 내게 보내주었다. 딸 아이의 반려견과 남자친구가 그려져있었고 삽화처럼 문장을 그려넣은 4컷 삽화였다. 컷을 그려낸 솜씨나 문장까지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이 훌륭했다.
“누가 그린거야?”
“누가 그려? 내가 그렸지”
“너 이렇게 그림을 잘 그렸어”
“엄마, 나 그림 좋아해. 엄마가 그때 나 스튜디오 그만 두라고...
맨날 똑같은 것만 그린다고… 그랬잖아. 나 그때 더 다니고 싶었단 말야~”
난 딸 아이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망치로 뒷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했다. 딸아이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속성으로 빨리빨리 그럴싸한 결과물만을 독촉하던 당시의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예술적 재능이 없나보다 포기하고 낙담하던 내 모습이라니…
아이에게 악기 레슨을 시킨 것도 내 결핍을 대리충족하기 위해서였다는 것도 최근에 깨닫게 된 사실이다.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복돋워주는 것,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면 난 제대로 부모역할을 해낸 것이 하나도 없는 불량 엄마였던 셈이다.
그나마 위안을 하나 삼아 본다면 요즘 아이가 뒤늦게 본인이 하고 싶었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레슨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량 엄마였던 나는 뒤늦게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고 나의 어리석음을 발견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아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아주고 격려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이를 아이 자체로 보는 것을 가리고 있던 나의 마음속 장애물... 그걸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의 나는 이런 내 마음의 장애물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걷어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나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