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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젤라 May 08. 2020

서른넷에 신입사원이 되었다

개발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나는 이제 막 웹 개발자로 취업한 신입사원이다.

100% 개발자들로만 구성된 10명 남짓의 작은 회사에 들어왔다. 나의 나이는 대표님 두 분을 제외한 사원들 중 제일 많다. 이제는 이런 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조금 멋쩍기는 하다. 


직업 선택에 있어 적성과 흥미를 중요시하는 나란 사람



서른넷에도 여전히 적성과 흥미를 찾아다니는 피터팬



나는 어떻게 서른넷에 중고 신입이 되기로 한 걸까.

그것도 원래 하던 일이 아닌 개발자라는 직업으로!

작년 여름부터 9개월간 국비지원 학원을 통해 코딩을 배웠고, 이 시국에 감사하게도 바로 취업까지 성공했다. 시작하기 전에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기에 더욱 각오를 다지고 뛰어들었는데 아직까지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인다. 


이 순조로움이 나에게 성취감을 준다. 단순히 돈 받고 개발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토록 방황하며 찾고 찾았던 나의 something을 드디어 시작했다는 느낌이랄까?!

그 썸띵이란 것은 뭐랄까 '천직'이라고 말하기엔 (나중에 내 삶이 또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까) 좀 무거운 말인 것 같고... 어느 정도 '적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아이덴티티'라고 말할 수도 있는 무엇이다. 

이것이 이렇게 나에게 기쁨이 되는 이유는, 나는 그동안 (경력적인 면에서) 아무 특징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 전공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 번 정도 "그래서 그게 뭐 배우는 과라고 했더라?"라고 묻게 만들고, 내 첫 직장에 대해 간추려서 5 문장 정도로 설명하면 "오 글쿤." 하는 반응을 불러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류쪽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첫 회사인 물류 회사를 퇴직하고는 갑자기 남미 여행을 다녀왔고 갑자기 작은 동네 카페를 차렸다. 뭐랄까 그냥 막살았다고 할까.




좋아하는 전공을 하기 위해 편입도 했고, 첫 직장도 가고 싶은 분야로 선택했고, 카페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해본 건데 어느덧 30대가 되어버렸다.

사실 나는 아무렇게나 산 것 처럼 보여도 끊임없이 방황하며 나만의 무엇인가를 찾아다녔다. 이 과정은 제법 치열했다. 나의 30여년 인생을 뒤적거렸다. 초등학생 시절 스쳐 지나가는 장래희망 중 하나였던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25년 후의 나에게 실마리를 줄 줄이야. 결정적으로 '인문학도 개발자 되다'라는 책을 읽고는 '아무래도 내 길인것 같으니 한번 도전해보자'며 마음을 굳혔다. 



개발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서른넷



국비지원 프로그래밍 학원을 다니면서 계속 성찰해왔다. 다른 20대 친구들이 코딩에만 몰두할 동안 최고령자인 나는 한국 사회에서 나이의 벽에 부딪혀 취업에 절망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며(?) 어떻게 이것을 극복해낼지 상상해보곤 했다.


그런데 별로 어렵지 않게 구직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엄청난 회사에 취업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 개발자로 살아남는 것은 더 어려운 영역이지만 그래도 일단 생각보다 쉽게 입성했다. 여러 회사에 합격하고 보니 내 생각보다 한국사회는 더 나이에 관대했던 것 같다. (개발자 한정 일지 모르지만) 은근 나 같은 늦깎이 비전공자 학원 출신 개발자들이 보인다.



사실 서른넷은 조금 애매하다.

마흔 살 정도 되었더라면 신입 개발자로 새 출발 한 이야기가 널리 널리 퍼질만하다. 주변에 가끔 있는 그 '마흔몇 살에 공무원 합격하신 분'들의 이야기가 종종 회자되는 것처럼. 

서른넷은 늦은 나이는 아니지만 커리어 전환을 결정하기에 매우 고민되는 나이인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아예 늦은 사람보다 더 손익 계산할 것이 많은 나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학원에 등록하기 전, 인생을 건 극심한 고민에 종지부를 찍어준 것은 어느 커뮤니티 게시판 글에 올라온 짤막한 댓글이었다. 27살인 글쓴이가 진로 변경 하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니냐는 귀여운 글에 달렸던 그 댓글. 삼십 대 중반에 개발자가 되어 해외 취업해서 잘 먹고 잘살고 있다는 담백한 댓글이 내 심장을 울렁이게 했다.


나도 삼십 대 중반이자나!! 나도 개발자 하고 싶자나!! 나도 해외 취업하고 싶자나!!


그 댓글의 응원 덕분에 나도 진짜로 서른넷 신입 개발자가 되었다. 

여전히 진로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지만 더이상 적성이나 흥미를 중요 요소로 생각하지 않는 내 또래들 사이에서 나는, '드디어 하고 싶은거 하고 산다!' 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짤막한 댓글이 나에게 트리거가 되었듯, 

나의 이 첫번째 브런치 글이 밤잠 새우며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의 시작에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커리어 전환에 막차는 없으니 하고 싶은일 해보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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