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살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나의 첫 사회생활은 26살에 시작되었다.
휴학을 두 번 하고 부랴부랴 취업하고 보니 20대 중반이 되어있었다. 그때는 그 나이가 참 늦었다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8년 후, 또 한 번의 신입사원 생활을 하게 될 줄은....
오랜 시간 회사 생활로부터 멀어져 있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져있었다. 달라졌다고 느낀 점 몇 가지를 적어보겠다.
나는 아직 이 회사에서 큰 실수를 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 작은 사고라도 치게 될까 봐 두렵다. 26살 때도 물론 같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의 두려움이 더 크다. 매일 다짐한다. 절대 실수하지 말자. 하더라도 같은 실수를 두 번은 하지 말아야 한다. 26살 때는 두려움 반, '신입이 실수하면서 크는 거지 뭐!' 하는 배짱 반이었는데 지금은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다. 아마도 이 나잇값에 대한 부담은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른 구성원들 역시 나에 대해 나잇값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입사하자마자 '과. 장.'이 되었다... 나이가... 많아서...)
26살에는 그때그때 주어진 일 익히고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일단 그렇게만 일을 처리해도 칭찬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 더해 일의 전후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해가며 업무를 해야 한다. 즉, 전보다 더 빠르게 업무를 익혀야 한다. 개발회사이기 때문에 코딩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코딩 실력에 대해서는 신입사원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다만 회사 자체의 비즈니스 로직을 속히 익히고 협력사와의 업무 흐름 등을 빠르게 흡수하면 할수록 좋다. 중고 신입에게는 그런 노련함을 기대하는 것이다.
신입은 입사 후 쏟아지는 정보들을 절대 제대로 기억할 수가 없다. 그래서 거의 모든 내용을 메모한다. 회의 시간은 물론이고 사수가 알려주는 단축키 팁 같은 것까지 모조리. 아마 나중에 보면 '뭘 이런 것까지 적어놨대' 싶은 것들까지 그냥 다 쓴다. 첫 번째 신입일 때는 이 부분을 놓쳐서 많이 고생했었다. 신입은 아직 뭐가 중요하고 안 중요한지 정보를 선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일단 다 저장해놔야 한다. 그러면 한 번 알려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질문하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질문은 바로 하는 것이 좋고 어떤 질문은 스스로 좀 찾아본 후에 하는 것이 좋은지 감이 생겼다. 한 번 알려준 것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일단 스스로 소화를 시켜보려고 한 후 잘 모르겠으면 바로 질문을 한다. 전에는 혼자 끙끙거리며 안고 고민했었는데 다 부질없다. 오히려 이런 질문들은 나를 좀 더 성의 있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반면, 회사 문서나 메모한 것을 들춰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은 가능하면 질문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이 부분은 전 직장과 현 직장의 분위기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전 직장은 지금 회사보다 좀 더 꼰대스럽고 상하관계를 엄격하게 따지는 편이었다. 상사가 시키는 일만 잘하는 사람이 칭찬받는 그런 구조였다... 지금은 훨씬 후리한 분위기이다. 아직 핵심적인 업무에 의견을 말할 실력은 안되지만 개발 툴이나 협업도구 같은 것들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하고, 받아들여지기도 하니까 자존감이 급 상승한다.ㅎㅎ 만약 전 직장이 이렇게 자유로웠다 하더라도 어렸던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의사표현을 쉽게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위에 기술한 것들 외에도 소위 '일머리'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 사회 초년생일 때에 비해 많이 업그레이드되었음을 느낀다. 누군가는 '나이가 있는데 이런 센스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뭐든지 나이만 먹는다고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26살의 나는 너무나 어리바리한 신입이었다.
채찍보다 당근을 줄 때 마음이 활짝 열리고 실력이 상승하는 타입인 나는, 회사에서 혼나고 깨진 마음을 매일 아침 자존감 높이는 주문을 외침으로써 상쇄시키곤 했다. 그랬던 내가 이만큼 성장하다니...!!! 혼자서 뿌듯함을 느끼는 중이다.
만약 30대에 인생 처음 입사한 분이라도 일머리 센스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면 금방 이 회사를 내 회사라고 부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원래부터 이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사람인척 하자. 회사에 빠르게 스며드는 것이 곧 30대 신입의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