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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젤라 Jan 29. 2022

(만)서른 다섯이 된 1.5년차 개발자의 회고

약간의 번아웃을 겯들인



오랜만에 주말에 혼자 카페에 왔다.

스타벅스도, 투썸플레이스도 아닌 개인 카페에 왔다.

이곳에는 식물이 많다. 음악도 좋다. 커피도 맛있다.


이런 여유가 참 오랜만이다.

시간적 여유는 물론 있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난 1년 동안 항상 무언가에 쫒기듯 살았다. 익혀야할 업무들과 개인적인 공부들에 압도되어서 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고3때 어쩌다 빈둥대는 날이면 불안했던 그 마음을 1년째 지니고 살고 있다. 

그 마음만큼 실력이 늘었는지는 잘모르겠다. 아무래도 솔루션 회사이다 보니 폭풍 코딩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계속 제자리인 것만 같은 느낌이다. 


1.5년 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재작년에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고, 다음 메인화면에 '서른 넷 신입사원이 되다'라는 글이 소개되었던 때가 떠오른다. 

나는 어느덧 (만)서른 다섯이 되었고 그 때의 설렘과 두근거림은 흔적도 없다.

서른 넷 호기롭던 신입 개발자는 어떤 1.5년을 보냈던 걸까.




1. 책을 읽지 못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절대 책 한 권 읽을 시간조차 없을만큼 공부에 매진한 것은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소설이든 만화책이든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책을 읽고 싶은데 '그럴 시간에 강의 하나 더 들어!'하는 마음의 소리 때문에 아무 책도 못읽었다. 다만 주식 관련 실용 서적만 몇 번 끄적거렸을 뿐이다. 인문학적인 소양이 바닥에 닿았다. 원래 다독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이 고프다. 지금 나의 상태는 개발공부 아니면 뭐든 다 재밌는 거 같다...


2. 개발자의 공부 방법에 적응하는데 오래걸렸다.

나는 한국식 시험 공부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그 덕분에 한평생 내가 공부를 잘하는 줄 알았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니까) 하지만 개발자가 되고 나서의 공부는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스타일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공부는 책을 한 권 쭉 읽고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고 디테일을 공부하는 식이었는데

개발 공부는 (개발 공부도 물론 그렇게 하면 정석적이겠지만) 대략적인 큰 줄기만 파악한 후 그때 그때 조각지식을 공부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 기술에 대해 몇 퍼센트나 알고 있는 건지, 너무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아는 건 아닌지 밑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도 나고 그렇다.  

개발은 결국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면 그 기술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데 나는 너무 완벽함을 추구했나보다. 


3. 수다 떠는 법을 잊었다.

우리 회사에는 ISTP와 INTP만이 존재한다. 그 와중에 나는 INFP이다. 나이 많은 감성쟁이는 나이 어린 로봇들과 나눌 이야기가 별로 없다. 점심시간에 애써 대화를 이어나가보지만 진심으로 웃겨서 웃었던 적은 많지 않다. 코로나때문에 주말에도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게 되면서 더 과묵해진다.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기 싫은 타입인 나는 이럴때 어찌할바를 모른다.


4. 꽁기꽁기한 마음이 늘어간다.

처음 개발 학원에 들어갈때부터 나이에 자유롭기로 스스로 굳게 결심해왔다. 꼰대가 되지 않기로, 90년대생과 잘 어울리기로, 낮아지기로 결심 또 결심하였으나... 누구에게도 말 못할 아주 작은 꽁기함이 조금씩 쌓여간다... 나의 팀장님은 올해 29살이 되었다. 너무 착하고 배려심 깊은 좋은 사람이다. 같은 설명을 기꺼이 무한 반복해서 해주고, 내가 어려워 하는 것을 먼저 들여다 봐주는 그런 사람. 그러나, 급작스럽게 반말을 한다거나 내가 하는 말을 다 끊을때 섭섭해진다. 하...나도 진짜 이런걸로 섭섭해하기 싫은데... 차라리 재수없는 사람이면 뒷담화라도 할텐데 너무 착한사람이 가끔 섭섭하게 하면 되게 섭섭해진다. 심지어 서러울 때도 있다. 그래도 다행히 퇴근길에 다 날려버릴 정도의 작은 꽁기함이긴 하다. (아 근데 지금 이걸 쓰고 있는 걸 보면 사실 안 날라가는 것 같다)


5.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거 맞겠지?

나는 나이가 많아서 다른 사람보다 시간을 두 배로 생산성 있게 써야한다. 다른 사람이 한 달만에 익히는 기술을 보름만에 익혀야 하고 하루 동안 하는 업무도 오전내로 끝내야 한다. 이런 압박감을 1년 내내 지니고 살았다. 누가 지워준 것이 아닌 내 스스로에게 부여한 압박이다. 그래서 정말 그렇게 살았다면 좋았을텐데 번아웃만 오고 말았다. 나는 24살 신입과 같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때면 내가 나이를 엄청 신경쓰고 살고 있구나 싶다. 백세코딩 시대라는데, 인생 60부터라는데,, 난 아직 어리다..젊다... 한창이다... 습관적인 주문을 외워본다.



1년이면 누구나 초심을 잃어버린다. 나도 잃어버렸다. 억지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일 수는 없다. 다만 지금 내 상태 그대로,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이 글은 어느 공부하기 싫은 주말, 우연히 너무 좋은 카페에 와버려서 쓰는 일기같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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