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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아리코테지 Jul 21. 2019

•맨해튼 7Av.어느 횡단보도•

우울한 출장.

뉴욕 JFK 공항은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늘 사람들로 심하게 북적였다.  

출입국 심사대 쪽을 쳐다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거기다 이번 출장은 마음이 무거운 출장.

돌아갈 때는 손에 결과물을 들고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출장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동행하신 이사님의 표정도 무겁긴 마찬가지이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이미 깨져있던 시차라 정신도 몽롱하고 컨디션도 최악 이건만 호텔에서 노트북과 서류 세팅을 마치고 메일함을 열었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메일을 열어보고 밀린 메일을 확인한 메일함으로 하나하나 보내는 건 눈곱만큼이라도 업무를 했다는, 어찌 보면 마음의 부담을 덜어보고자 하는 굉장히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컨디션으로는  잠을  청해봤자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만 더 차오르니 미련한 짓이라도 해야 했다.


바이어 미팅에 필요한 자료를 추리고 밖에 나가 뭐라도 한잔 사 마시고 들어오려고 호텔 로비를 지나 바깥으로 나갔다.

‘이 장면.. 어디서 본거 같은 기분인데.. 아.. 맞다.

쉰들러 리스트  영화에서 온통 흑백 장면속 작은 여자 아이만 붉은색 코트를 입은 컬러로 표현된 그  장면!’

그와는 반대 상황이긴 했지만 그 장면이 연상됐다.


맨해튼 한복판을 바삐 오가는 사람들은 표정과 기분이 총천연색이었다면 몇 시간 전 비행기에서 내려 멍하니 그 안에 서있는 내 몰골은 어두 침침한 흑백의 컬러 같은 느낌.

여행객들의 활기차 보이는 설렘의 모습과 그곳 사람들의 생동감 있어 보이는 일상의 모습으로 언제나 에너지가 그득해 보이는 곳이지만 그 속에 나는 그냥 초조히 바이어와의 미팅을 기다리며 불편한 마음으로  호텔에 머물고 있는 먼지 같은  존재 같았다.


업무가 잘 진행되어도 바로 또 출장을 가야 해서 우울했고 성과가 없으면 없어서 우울한 상황.

머릿속 한편으로는 미팅이 어그러져 한국에서는 난리가 나고 매출 부진으로 자리를 버텨내기 힘들게

되어 그만두는  상상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럼 출장 인생도 매출의 압박도 해피 엔딩이건 풍비박산 엔딩이건 엔딩이 오긴 오는 거니까.


바이어가 미팅 날짜를 미루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날까지 불편한 마음으로 또 기다려야 한다.

호텔방에서 답답하게 있느니 이사님께 외출함을 알려드린 후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반짝반짝

멋을 부린 여행객 사이에 이곳 어디 음침한 곳에 사는 노동자 같은 행색의 내 모습이 대조돼 보이긴 했지만 그런 신경까지 쓰는 걸 포기한지는 오래다.


무작정 발길이 향하는 방향으로 오분 정도 걸었다.

아.. 맞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십 년 정도 전에 3개월가량을 친구 집에서 지냈을 때 같이 자주 다니던 빈티지 가게가 생각났다.

요즘은 빈티지 가게도 브랜드화되어 동일한 가게가 동네마다 같은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는 곳이 많지만 그곳은 메인 도로에서 좀 떨어진 그냥 동네 빈티지 가게였다.

가게는 그대로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 걷고 또 걸어 꽤 긴 거리의 블록을 지나 그곳에 다다랐다.


어.. 있다!

그대로 그 자리에.

그때보다 간판이 낡아 있고 군데군데 새로 페인트 칠을 한 흔적도 보이지만 그 자리에 같은 가게가 있어줘서 얼마나 반갑던지.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던 마음에 뭔가가 활활 타올랐다. 보물찾기 경쟁에서 선생님이 숨겨둔 쪽지를 찾던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 같은 마음 같은 거였다. 새로운 상품을 쇼핑하는 마음과 뭐가 발견될지 모르는 빈티지 가게의 쇼핑은 마주하는 마음부터가 달랐다.

마침 어떤 할아버지가 봉투 한가득 물건을 가지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위탁판매를 하려고 본인의 물건을 가지고 온 눈치였다.

'저 할아버지 봉투엔 어떤 오래된 물건이 있을까....' 궁금해하며 가게 초입 선반을 훑어보기 시작했는데 지금 호텔로 빨리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왔다.

미뤄졌던 미팅이 잡혀 가야 한다고..

하필. 할아버지 가방 안 물건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일 때..


가까운 곳의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미드타운의 호텔로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돌아가서 서류와 노트북을 챙기고 옷도 갈아입어야 했고 가방 안에 정장용 구두도 찾아 신어야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호텔방으로 올라가 낼 수 있는 속도는 다내가며 준비를 마쳤고 구두를 신으려 양말을 벗으니 발등의 피부염이 최악의 상태라 구두를 신어야 할지 말지 망설여졌다. 때마침 빨리 로비로 내려오라는 메시지를 받고 생각할 겨를 없이 구두 속으로 발을 넣었다.

정장 바지 끝자락이 걸을 때마다 발등의 피부염의 상처를 가렸다 보여줬다 하는 통에 계속 거슬렸지만 앞질러 빨리 걸어가시는 이사님을 보니 미팅 시각이 여유 있지 않다는 게 짐작됐다.  

발등이 거북이 등껍질 처럼 갈라지고 염증이 생긴 상태의 심각한 상처라 그냥 운동화를 신고 올걸 이라는 후회도 들었지만 딴생각할 겨를보단 빨리 미팅 장소에 도착해야 하니 발걸음 속도를 올려 뛰는듯한 걸음으로 목적지가 보이는 횡단보도 앞에 다다랐다.

앞서 떨어져 걸으시던 이사님과 횡단보도에 나란히 섰고 보행신호를 기다리던 중에 발등을 덮은

피부염을 목격하신 이사님께서 좀 많이 놀란 눈으로 발등이 왜 그런 거냐며 물으셨다.

내가 봐도 심각해 보이는 상태라 좀 놀라신 눈치였다.

이미 파란색 보행신호등으로 바뀌었지만 내 발등의 상처가 바쁜 발걸음을 멈칫하게 만든 것 같아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사님 늦어요. 빨리 건너세요."

어린아이 마냥 나 아프다고 티 내는 것 같아 에둘러 부연설명을 했다.

"출장 오는 날 엄마한테 대학병원 예약 부탁드리고 왔어요. 회사 근처 약국 약으로는 나을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서요. 면역이 좀 떨어졌나 봐요"

라고 약간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하지만 내 몸상태가 힘들긴 힘들다는 걸 우회해서 전달하고 싶었다.

'나죽겠소'라고 직접적으로 말씀드리기엔 이사님은 어쩌면 나보다 더 심한 속병을 앓을지도 모를 것 같이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일하시는 분이라 그 앞에서 컨디션 핑계 삼은 앓는 소리는 사실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었다. 바쁘게 일하는 와중이긴 하지만 체력관리도 제대로 못하냐는 소릴듣는것도 싫었다.


파란 신호등으로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이사님은 계속 내 발등을 쳐다보고 계셨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이사님도 복잡한 심경이신걸 표정과 눈빛에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렇게 미팅 장소에 다다랐고 그 후 며칠 동안 추가 미팅이 더 있었지만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내려진 결론이 없는 출장은 기분을 더 안 좋게 했다.

결과가 아직 안갯속에 있었지만 결과에 마음을 휘둘릴 여력이 없는 상태라 그냥 될 대로 돼라 라는 마음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아... 결국 빈티지샵 할아버지 물건도 못 보고 돌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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