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 않았던 결정.
마지막 출장을 끝으로 팀의 분위기는 살벌할 정도로 좋지 않았고 위기를 대처할 뾰족한 방안을 낼 에너지도 소진되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회사 내 분위기에 내 기분도 같이 섞여 걱정과 중압감에 사로잡혀 하루하루 피 말리는 날을 보냈겠지만, 오히려 그런 순간을 오래 손꼽아 기다린 사람처럼 탈출의 기회같이 느껴졌다.
미련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주변의 눈치도 어느 것 하나 살필 겨를 없이 직장인들이 두려워하는 사직서라는 파일을 찾아 급하게 작성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면 이 힘든 상황을 끊어 내기 어려울 거 같아 자의 반 타의 반 적절한 회사 분위기와 무거운 자책감을 전부 나에게 덮어 씌우지 않아도 될 때. 조금은 덜 무거운 마음으로 사표를 낼 수 있는
기회처럼 보였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압박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 숨통이 트이는 시간을 갖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여러 가지 부분의 정리할 시간을 가졌고 내 사표는 성공적으로 던져졌고 마지막 날 회사의 회전문을 돌리고 밖으로 나온 기분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거 같다.
손에는 간단한 짐이 들려있었고 집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무한정 잠을 청하고 싶었지만 우선 근처 카페에 들어가 노트에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대로 끄적인 메모였지만 생각과 손이 합작해 그대로 종이에 써내려 지는 내 안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 기록되고 있었다.
-무작정 여행 가기
-전화번호 바꾸기
-못했던 일 마음껏 하기
-출근 시간대에 카페에 앉아 사람 구경하기
-미래에 대한 생각은
몸과 마음이 허락할 때까지 하지 않기
-시골집에 머물기
-건강 추스리기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갖기
-지금의 상황에 절대 후회하지 않기
매일 머리가 띵하도록 울려대던 휴대폰의 번호를 바꿔서 나를 위해 비워질 시간들은 잠시 사람들로 부터 그리고 세상으로 부터 단절하고 싶었고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는 여행도 평일에 무작정 떠나보고 싶었고 모든 게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게 미련 없이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맹세하고 다짐했다.
난 욜로족은 아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에서도 의미 부여가 안됐고 무너진 나를 다시 끌어올리는 시간이 필요한 건 확실했다.
그렇게 사표 찬스를 잡아 사직에 성공했고 이 찬스를 절대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