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아리코테지 Jul 28. 2019

•보물창고의 문이 열린 날•

오랜 시간 닫혀 있던 빈티지 집합소.

주말에만 방문하던 시골은 빨강 빈 집이 매개체가 되어 방문 횟수를 잦아지게 했고 빈집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살림살이의 리스트를 작성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빈집에서의 생활 목적이나 주거하는 방식에 따라 살림살이들의 타입과 종류들이 달라질 것이기에 정말 유용하게 사용될 것들을 위주로 장만해 보기로 했다.


각 방의 구조들의 도면을 손으로 그려가며 그 안에 들어갈 살림살이를 배치하는 상상의 작업이

필요했고

그러다 문득.  뭔가 뻔한 살림살이나 여기저기 핫하다는 물건들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을 거 같다는 느낌이었다.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 자리한 집.

너무 전통 적이 지도 그렇다고 너무 외국에서 본듯한 인테리어도 아닌 그냥 지금의

내 마음 같은 공간이 만들어 지길 막연히 바랬다. 가면을 쓰고 있거나 부연 설명이 필요하거나 덧칠해지지 않은

툭 하고 힘없이 던져진 내 마음과 같은 공간. 자연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춘 곳이 아닌 원래 그 자리에 예전부터 있던 것과 같은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 보리라..


어르신과 집 내부를 정리하며 집안에 오래 두었던 살림살이 중 내가 사용하거나 가져도 된다고 하신 물건들도 생겨 났고 그런 물건들은 원래 집에 있던 것들이라 이질감이 없기도 했다.

 

오래된 소주잔, 밀크 글라스 접시들, 자그마한 바구니 등..


집 내부의 정리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갔고 고장 나있던 보일러와 수도를 손보기 위해 읍내 기술자를 모셔와 작은 공사를 시작하며 어르신과 나는 뒤뜰 창고를 정리하기로 한날.

어르신께서는 창고에 엄청나게 쌓인 잡동사니를 정리하실 생각에 한숨을 내쉬시는 눈치였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진짜 오래된 빈티지의 보물 창고를 정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일이라 내심 큰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뉴욕 출장 때 짬을내 방문했던 빈티지 샵의 구경하고 오지 못한 물건의 미련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창고를 정리하려던 순간 갑자기 걸려온 친구의

전화 한 통.

"너 전화번호 바뀐 거 모르고 예전 번호로 전화했다가 안 받아서 뭔가 했지 뭐야. 사표 내고 이제 살만 하냐?"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과 안부가 궁금한 눈치였다. 친구가 사표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말하는 바람에 내가 사직을 하고 이곳에

와있는 거란 걸 찰나의 순간에 번뜩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평일 이기도 했으니.

잠시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다. 집에 홀려, 눈앞에 곧 열릴 창고에 홀려 사직한 상태를 잠시 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온 날이 까마득히 느껴졌다. 그래 봤자 두 달여 남짓인데.

정신없는 악몽의 꿈을 깨어 현실이라는 걸 알고

다행인 기분이었다.

"어. 나 지금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만나면 얘기 해 줄게."

"뭐야 벌써 면접 보고 그러는 거야?"

이번엔 금기어가 됐으면 하는 면접이란 말에 행복을 위협당하는 기분이라 짜증이 밀려왔다.

"미안해. 나 진짜 지금 뭐 좀 하고 있어서 통화를 길게 못해. 이따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받기 전 느끼고 있던 설렘과 행복함을 이어가 보려고 끊어졌던 기분의 끝자락을 다시 붙잡았다.

 


오래된 지붕도 삭아 보이는 벽의 블록도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모으셨다는 말보다 쟁여 놓으신 상태가 더 어울리는 창고를 마주하다 보니 끊어졌던 기분을 다시 이어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쌀쌀한 겨울 날씨라 무장을 하고 일을 해야 하는 바람에 답답하긴 했어도 손과 눈은 바삐 움직였다. 문을 열자마자 엄청난 양의 온갖 잡동 사니 들로 어르신과 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하루라도 빨리 창고를 비워야 집과 창고의 정리가 마무리될 수 있었기에 버릴 것과 어르신이 가져가실 것 그리고 나에게 하사(?) 하시는 것 등으로 자리를 나누어 정리에 돌입했다.


어떤 박스는 추억에 잠기게 하는 예전 자료들도 있는 듯해 보였고 중요한 사진들이나 가족들에게 한 번쯤은 보여주고 버려야 하는 물건들은 따로 챙기셨고 난 오래되어 보이는 닭 여물 통과 다듬질을 할 때 쓰던 방망이 그리고

여러 사이즈의 나무판자들, 몇 군데 깨어진 오래된 조명, 문짝 등을 버리시려고 빼놓은 것들에서 다시 주워 한 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수십 년을 이 자리에 비바람 맞으며 물건들을 보호해준 이 공간이 새삼 든든하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이것저것 버릴 것과 어르신께서 서울로 가져가실 것 그리고 운 좋게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등등을 정리하고 나니 작은 트럭 일곱 대 분량의 꽤나 많은 양의 짐들이 비워지고 난 후에야 창고 정리는 마무리 지어졌다.

이틀 동안 이어진 큰 작업이었지만 시간과 이야기를 머금고 있는 내게 주어진 물건들을 응시하며 난 또

어느새 빈집의 공간을 머릿속에 스케치하고 있었다.


이제 이 오래된 물건들과 이곳저곳 다니며 개인 적으로 모아 온 물건들이 조우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여 밤잠이 설쳐지기도 했지만 무언가에 홀릭이 되어 있는 그 순간은 원래의 나로 돌아온 것 같아 살맛 나는 일이기도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