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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아리코테지 Aug 04. 2019

•여중생은 뭐가 되고 싶었을까•

여중생의 바느질

시골집 뒷마당 창고를 정리하며 입었던 두꺼운 패딩점퍼를 옷장에 넣어둬야 하는 계절로  흘러가고 있지만 아직 코끝 바람은 찬 날이 많았다.
코테지 뒤뜰을 밀림으로 만들어버린 등나무를 제거하고 살림을 들여놓을 공간을 마련하는 정리를 하는 데만도 겨울의 반이 지나갔다.


이제 코테지 내부를 본격적으로 손보고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으로 차근차근 바꿔가는 일이 진행 중이었다.

매일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생활에 적응된 몸이 예기치 않은 노동을 하다 보니 손가락 마디마디며 어깨 근육이며 움직일 때마다 'I GO' 라는 외마디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내가 참 간사해 보이기도 했다.

숫자 계산에 머리가 아파 죽겠다고 하다 이젠 몸이 아파 죽겠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는 진행 중인 것 같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크고 작은 노동으로 뭉친 어깨에 침 치료를 받고

서울 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겸 머물며 뒷산을 바라보니 보니 코테지 주변보다 한 템포 빠르게 봄이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커튼 2폭이 봄맞이용 인지 뭔지 뜬금없이 엄마방 창가에 걸려있는 걸 보자마자 피식하고 웃었다. 커튼 폭도 기장도 엄마방 창에는 맞지 않았고 엄마의 감성과도 동떨어진 커튼을 왜 달아 놓으셨냐 물었다.

"너 중학생 때 방에 쭈그리고 앉아 손바느질로 저 커튼 만드느라 그날 체하고 몸살 났었잖아...
공부는 안 하고.... 저거 꼬매 놓은 거 보니까 버릴 수가 있어야지....”


엄만 내가 만들었던 커튼 2폭을 지하실 창고에 고이 접어 보관하고 있다가 창고를 정리하던 중 다시 발견하고는 그걸 당신 방에 다시 걸어 놓으신 모양이다.



잠시 그때의 교복을 입고 있던 나로 되돌아 가본다.


학교에서 돌아와 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전날 사둔 체크 패턴의 원단과 광목을 보며 굉장히 설레어했고.

3평 남짓한 그 시절 나의 파라다이스였던 작은 방안은 커다란 책상 하나, 커다란 창문 하나가 전부였던, 침대도 놓이지 않았던 공간이었다.
무언가 만들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방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던 그때 그 여중생의 집착 같은 열정이 창고에 묵혀 접혀있던 커튼 속에 켜켜이 숨어있다가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미술시간을 좋아했고 3평의 작은 방안엔 벽에도 천정에도 소품과 그림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여중생은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사고 싶은 소품은 너무 비싸서 맨날 구경만 했고 내 작은 3평의 파라다이스를 꾸밀 수 있는 건 손바느질로 만든 커튼과 나무로 만들어진 사과상자가 작은방의 장식장을 대신하는 게 다였다.

사과상자를 벽에 걸어 선반을 만들고 그 안에 직접 만든 소품들을 모으고 장식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여중생의 소박하고 기발했던 발상이었다.


나를 돌아보면 꿈을 꾸고 무언가를 향해 달리던 시간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너덜너덜 해진 지금의 내 모습이지만 나를 지나치고 있는 지금 순간들은
열정을 다시 찾기보다 열정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발판의 시간으로 채워졌으면 한다.


어쩌면 내게 찾아온 방아리의 빈 집은 사춘기

시절의 파라다이스가 돌고 돌아 지친 나를 위해 다시 찾아와 준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을 어루만지는 시간이 스스로의 치유와 숨막히던 삶의 호흡을 고를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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