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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Dec 02. 2023

동병상련_(상)

고부를 넘어서

정말이지 오랜만에 애들 아빠가 집 앞에 다녀갔다. 차 트렁크를 열고 친정집 다녀온 막내딸처럼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들을 바리바리 내리더니 잠깐 쭈뼛대다 입을 열었다.

 

"엄마가 갖다 주라더라. 언제 한 번 가게 들르래."

"똥이 아빠가 시간 날 때 애들 데리고 한 번 다녀 온나. 언제 갈지 미리 말해주고."

"니 말이야. 보고 싶단다. 애들 데리고 한 번 오래."

"나를?"

"그래."

"어머님 어디 편찮으시나?"

"아니."

"알겠다. 잘 먹겠다고 말씀드려."

"간다."


이 무슨 지루하고 조잡한 족보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직 애들 할머니를 어머님이라 부른다. 이혼 과정에서 시댁 어른들께 받았상처가 완전히 아물어서도 아니고, 아이들 아빠와 끊어진 연을 다시 끌어다 붙이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30대 중반에 혼자되신 어머님은 재가를 하지 않고 남매를 키우셨다.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혼자가 된 여자들이 다양한 연유로 재가를 하듯 어머님 보다 더 늦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던 엄마도 재가를 했다. 그리고 그 재가는 내게 많은 아픔과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꽃 같이 고운 어머님이 어찌 혼자 살아오셨는지 어머님에게 그 세월은 어떤 의미였는지 항상 궁금했다.


내가 어머님께 어렵사리 그 질문을 꺼낸 것은 몇 년 전인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 추석 전날의 밤이었다. 다만 창문으로 달빛이 환하게 들어와 전혀 어둡지 않은, 마음에 담아 놓았던 이야기가 달빛을 타고 잔잔히 흘러나오기 좋은 그런 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온종일 뛰어놀던 아이들이 한데 엉켜 잠들고 오랜만에 만난 어른들은 잔을 기울이러 포차 거리로 나갔다. 술을 못 하는 어머님과 나는 나란히 누워 어색한 잠자리에 들었지만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어머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어머님, 오늘 힘드셨지요?"

"아니다. 너희 오기 전에 다 해 놓는다는 게 일을 남겨놔서 너까지 일을 하게 만들었네."

"아니에요. 제가 조금 더 일찍 와서 도왔어야 하는데 늦어서 죄송해요."

"아니야. 다음엔 더 늦게 내가 연락하면 그때 출발 해."

"어머님. 뭐 하나 여쭤봐도 돼요?"

"뭔데?"

"혼자 애들 아빠랑 고모 키우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힘들었지. 왜  안 힘들었겠니? 갑작스레 애들 아빠 그리 돼서 아무런 준비도 안 돼 있었잖아. 다행히 아이들 아빠 몫으로 나오는 연금이 있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금전적으로 많이 도와주셔서 살 수 있었지. 친정 부모님 보탬이 없었으면 혼자 애들 못 키웠을 거야. 그러고 보면 친정 그늘이 참  크다."

"재가하실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어머님 지금도 이리 고우신데 젊었을 땐 오죽하셨겠어요."

"애들 데리고 사는데 바빴지. 그리고 내가 재가하면 총각한테 시집을 갔겠니? 나랑 처지 비슷한 누구를 만나지 않았겠어? 애들 나 때문에 눈치 받으며 살게 하기 싫었다. 에그그. 내가 너 앞에서 별소리를 다 하네. 우유 한 잔 데워 마시고 자야겠다."


내가 정 그늘을 누릴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아셔서 그랬는지 재가한 안사돈이 걸려서 그러셨는지 지나온 삶의 무게가 갑자기  하고 떨어져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인지 어머님은 황급히 자리를 피하셨다. 어머님 대신 우유를 가져다 드리겠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달빛 아래 오만가지 감정들로 소소하게 떨리던 어머님의 얼굴을 보았고 어머님께 혼자만의 시간을 드리고 싶었다. 나는 이불을 덮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자식들 조차 알아주지 않던 시간을 며느리가 알아준 데 대한 고마움이었을까? 그날 이후 어머님은 나를 더 알뜰살뜰히 챙기셨고 받은 사랑의 무게만큼 어머니를 향한 나의 마음도 커갔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어머님과 나는 세상에 둘 도 없는 고부 지간으로 살았다.


아이들 아빠의 외도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에 온몸이 시퍼렇게 멍든 시누가 아이들 셋을 데리고 우리 집에 찾아들었다. 아직 마음을 온전히 추스르지 못했지만 엄마를 향한 아빠의 일방적인 폭력을 지켜봤을 아이들과 시누의 마음에 깊게 파고들었을 멍자국을 생각하면 그들을 돌려보낼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유연근무까지 써 가며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그들이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따뜻한 끼니로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는 사이 시누 남편이 아이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시누의 행적을 몇 번이나 떠봤지만 시누가 우리 집까지 찾아왔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 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근거리에 있는 친구네부터 어머님 댁, 이모님 댁을 지나 수색 반경을 넓혀오던 시누 남편은 마지막 남은 후보지인 우리 집도 거르지 않았고 예상 못 한 시누 남편의 급습으로 인해 집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아수라장 속에서 이 처참한 가정 폭력의 시발점이 시누와 호스트바 남자 종업원의 부적절한 관계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과 한 달 전 내가 겪은 일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안위를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내 집을 찾아온 시누의 뻔뻔함이 경멸스러웠고 비슷한 시기에 두 남매가 새벽바람을 맞으며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역겨우면서도 우스웠다. 경멸스러움과 역겨움, 배신감과 허탈함 그 모든 감정이 분노라는 불덩어리가 되어 내 맘에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 분노의 화살을 가장 편하고 믿었던 상대인 어머님에게 쏘아 버리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어머님, 자식들 잘못 키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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