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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Oct 09. 2023

미용실에서 동창을 만났다

미용실을 찾아서

 딱 떨어지는 단발머리가 한참을 유행했다. 유명 연예인을 비롯해 예능 프로에 나오는 일반인, 우리 동네 미술학원 선생님까지 예쁜 여자들은 저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짧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상큼한 외모를 뽐내고 다녔다. 그들로 인해 내게도 잠시 단발병이 도졌지만 입력값과 출력값이 확연히 다를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병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110만 원이 조금 넘는 휴직급여를 받으며 통장 파먹기 중인 반백수에게 미용실은 사치같이 느껴졌다.

예쁜 단발의 전형(좌)을 내게 적용할 때 직면하게 될 현실(우)

하지만 이런 속을 알지 못하는 엄마는 틈만 나면 머리 좀 확 끊어버리라고 속사포 랩을 해대셨다. 머리를 풀고 있건 묶고 있건 가리지 않고 랩은 계속 됐는데 엄마 눈에 긴 머리는 물귀신처럼, 틀어 올린 머리는 청승맞은 과부처럼 보이지 않았나 싶다. 여기에 얼마 전부터는 손주들과 그룹이라도 결성했는지 딸과 아들도 합세해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가족들의 설득에 결심이 흔들릴 때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서도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니 머리 좀 잘라라. 너무 길다. 자르는 게 훨 나을 것 같은데."


이 정도 되면 계속 긴 머리를 고수하는 게 다른 사람들 안구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상황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헤어스타일을 좀 바꿔 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미용실로 가야 하지? 이 깡촌에도 미용실이 있지만 공장에 가까워서 옆집 할머니도 뒷집 아줌마도, 우리 엄마도 미용실 문을 나올 때면 머리에 포도송이 같은 헬멧을 장착하고 있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으레 머리를 하려면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머리를 할 때면 차로 10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 대학가로 나가곤 했다. 내가 다니던 곳은 지인이 운영하는 1인 미용실이었는데 그 언니 손끝이 야무지기도 하고 시술 비용도 합리적인 편이라 대부분 그곳에서 머리를 했다. 그런데 그 미용실이 얼마 전 조금 더 먼 곳으로 확장이전을 했다. 제반 시설이 부족한 촌에 살다 보면 차로 30분 거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는 이 기회에 미용실을 바꾸기로 했다.


미용실 언니는 나의 지인이자 아이들 아빠의 지인이기도 해서 우리의 결혼부터 출산 이혼에 이르기까지 대략적인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말 그대로 대략적인 역사를 아는 것에 지나지 않아 가끔 머리를 하러 갈 때면 아이들 아빠가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미용실에서 눈물을 훔쳤다는 믿지 못할 소리나, 아이들 아빠가 지금 만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나로 말하면 아이들 아빠와 쿨하다 못해 찬바람이 쌩쌩 돌 정도로 나쁘지 않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뉴요커다. 하지만  정기적 면접 교섭권을 팽개치고 자기 편한 날에 담배 가게 담배 사러 들르듯 잠시 얼굴만 삐죽 디밀고 사라지는 남자가 아이들이 그리워 눈물까지 보였다는 소식을 듣고도 평정심을 유지할 만치 마음이 너른 사람은 아니었다. 여기에 더해 내가 궁금하지도 않은 애들 아빠 연애 소식을 들어야 하듯 애들 아빠 역시 내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앉아있을 생각을 하면 기분이 언짢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미용실에 들어서는 순간 입술을 딱 붙인 채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다.


생각해 보면 지지고 볶는 온갖 이야기들이 싹둑 잘린 머리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미용실에서 본인이 한 말이 어디론가 퍼져나갈까 봐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헤어스타일을 바꾸었을 뿐인데 마음이 덩달아 가벼워지는 이유도 무심코 털어낸 이런저런 말 무게 덕분일 수도 있다. 내게도 치렁치렁한 머리와 함께 말을 가볍게 털어내고 올 수 있는 미용실이 필요했다.


하지만 돈, 거리, 실력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미용실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열심히 검색한 끝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1인 미용실을 알아냈다. 서울에 이름난 샵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디자이너 지오선생님이 하는 작은 가게. 다녀온 사람들의 평도 좋았고 시술비용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예약을 하고 미용실에 찾아간 날,  나를 맞이하는 얼굴이 어딘가 낯익게 느껴졌. 나는 원하는 헤어스타일과 내 두상 및 모발의 특성에 대해 브리핑을 한  시술 의자에 앉아 입을 봉했다. 머리를 자르고 펌제를 바르고, 롤을 감고..... 그러는 동안거울 속 얼굴에 눈길이 자꾸만 가고, 마음이 불편해지고, 목구멍이 간질간질해서 못 참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결국 입을 떼고야 말았다.


 "혹시? 원장님 ○○중학교 나오지 않으셨나요?"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그 중학교 나왔거든요."

 "혹시....? 부리?"


새로 찾은 미용실의 주인이자 헤어디자이너인 지오선생님은 나와 같은 동네에서 자라 중고등학교까지 같이 나온 동창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기억된 과거의 퍼즐을 맞추며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매년 동창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다며 잘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의 이름과 근황을 술술 대는 지오선생님에게 나의 근황을 말하기 싫었다.


시술이 다 끝나고 거울에 비친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지만 왠지 이 곳에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가벼워진 머리와 조금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며 이 헤어스타일이 오래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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