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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Oct 31. 2023

슬레이트 처리지원사업을 아시나요?

집에 관한 기록_23.10.05.

요즘 초등 사회 교재 매력에 빠져 다. 음식에 빗대 보자면 각양각색의 재료가 굵직하게 썰어 담긴 영양만점, 풍미 가득 비빔밥 같다고 해야 할까? 쉬운 표현 속에 역사, 지리, 일반사회의 중요 내용들이 잘 녹아 있어 읽다 보면 짧은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굴비 엮이듯 줄줄 엮여 나온다. 똥이 공부를 도와줄 요량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교재 보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시간을 기다리는 건 주로 내쪽이 되어 버렸다.  


이번 주에는 자연에서 얻기 쉬운 재료(돌이나 나무)를 이용해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의 의식주 생활에 대해, 지난주에는 고장의 자연환경에 따른 주거 생활의 특성에 대해 읽었다. 책에는 농촌 사람들은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볏짚을 이용해 만든 초가집에 살았으나 볏짚에 벌레가 많이 생기고 썩기 쉬워 매년 지붕갈이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거기까지, 초등사회 교재에서는 딱 거기까지를 다룬다. 그다음 굴비 엮기는 읽는 사람 몫이다. 어떤 이는 양반가옥과 서민 가옥의 차이를 엮어 올릴 테고, 어떤 이는 민속촌이나 전통마을에서 한 번쯤 보았을 초가집의 모습을 생생하게 엮어 올릴 것이다. 자연 생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초가집 지붕에 사는 곤충이나 애벌레 등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 짓기라는 숙원 사업을 진행 중인 나는 슬레이트 처리 지원사업이라는 굴비를 엮어 올렸다.


매년 지붕갈이를 하던 초가집들은 1960~70년대 새마을 운동과 함께 지붕개량 사업의 대상이 되었다. 기적의 물질로 불리던 석면을 다량 함유한 슬레이트 지붕은 그렇게 농촌주택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1987년 석면이 세계보건기구에 의해 1급 발암물질로 규정되었고 건축자재와 섬유제품 등에 널리 쓰던 석면이 폐암, 석면폐 등을 유발하는 물질로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도 석면이 0.1% 이상 함유된 제품의 수입과 사용을 금지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석면함유 1%를 초과하는 건축물을 허가 없이 해체, 제거하다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에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농촌지역의 경우, 57만 동(2023년 환경부 보도자료, '2023년도 가구당 슬레이트 지붕 철거비 지원규모 2배로 확대' 발췌)이 넘는 가옥(축사, 창고 포함) 지붕에 올려진 슬레이트가 석면을 무려 10% 정도나 함유한 유해물질이라고 한다.


물론 슬레이트는 시멘트와 석면을 섞어 굳힌 것으로 처음에는 크게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슬레이트가 햇볕과 비바람에 장기간 노출되며 부스러지게 될 경우, 공기 중에 미세한 석면 먼지가 떠다니게 되는데 이를 흡입하면 10~30년의 잠복기를 거쳐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환경부에서는 2033년까지 농촌 주택의 슬레이트 지붕을 완전히 철거하는 것을 골조로 하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슬레이트 지붕 처리 비용을 가구당 700만 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현금으로 지급되는 것은 아니며 지자체에 사업신청을 하여 선정되면 지자체와 계약된 업체에서 직접 철거를 진행, 처리 비용이 700만 원을 넘길 경우에 초과 분에 대해서만 자비를 부담하면 된다.


매년 초에 지자체에서 슬레이트처리지원 사업 신청을 받고 있으며, 신청자가 많지 않거나 중도 포기자가 발생할 경우 하반기에 추가신청을 받기도 한다. 정기 신청을 놓친 나도 추가 신청을 통해 운 좋게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처리 비용도 비용이지만 요즘 같아선 눈앞에 닥친 일이 너무 많아 처리 업체를 알아보는 것도 버거웠을 텐데 환경영향평가부터 슬레이트 지붕 제거까지 군에서 지정한 업체에서 알아서 해주니 고마웠다. 


처리업체가 다녀간 뒤 며칠이 지나서야 현장에 가 봤는데 머리통이 훤히 드러난 창고동과 더벅머리의 본동이 맑은 하늘 아래 멍하니 서 있는 꼴이 우스웠다. 멀찌감치 서서 우습게 생긴 집을 바라보며 내 앞에 어질러진 일들이 저렇게 한 겹 한 겹 다 벗겨져 깨끗이 사라지길... 내년 이 맘 때에는 새 집에서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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