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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Oct 05. 2023

측량을 못 하는 땅, 공차 초과 필지

집에 관한 기록_2023.09.27.

"안녕하세요? 부리님 되시나요?"

"네."

"국토정보공사 ○○지사입니다. 경계측량 신청하셨는데요. 신청하신 부지가 공차 초과 필지라서요. 현재 상태로는 측량이 어려워 연락드렸습니다."

"네? 공차 뭐라고요?"

"쉽게 말씀드리면 공부상 면적과 실제 면적이 다르단 말인데요."


집을 짓기 전에 경계 측량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정해진 바는 다. 하지만 남북으로 길게 휘어진 모양에 폭이 좁은 우리 부지의 경우는 옆 집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남향으로 된 집을 짓기 위해 설계 전, 경계측량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칠십만 원에 달하는 측량 비용이 조금 아까웠지만 나중에 문제 생길 일을 만들기 싫었기에 측량을 신청하고 접수 문자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밀크티로 유명한 커피숍 이름을 대며 측량이 안 된다고 통보를 하다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무슨 문제든 해결 방법이 있는 . 단순히 안 된다는 말만 하려고 전화를 한 건 아닐 것이므로 미친 소처럼 달려드는 대신 '공차 초과 필지', '토지대장 등록사항 정정(면적) 신청' 등의 생소한 단어 등을 받아 적으며 국토정보공사 담당 직원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하지만 담당직원은 땅 주인 입장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그런 것인지, 말해봐야 일반인들은 못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해서였는지 말을 상당히 아끼는 듯했다. 처리과정 없이 결괏값만 입력하면 튕겨내는 뇌구조를 가진 나는 결국, 관련 논문을 찾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군청 토지정보과에 전화를 걸어 사태를 직접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측량을 신청한 땅은 공차 초과 필지이다.

-1996년 종이로 관리되어 온 지적도면을 전산화하는 작업이 시행*되며 토지대장에 등록된 면적과 수치 파일화 된 지적도면에 산출된 면적이 차이가 나는 토지가 발생 한다. 담당직원이 이유를 말해주진 않았지만 수기로 모든 행정 업무가 처리되던 시기에 단순 오기로 발생한 문제일 수도 있고 컴퓨터가 면적을 재는 방식과 인간이 면적을 재는 방식의 차이로 생겨난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다니고 있는 기관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 국가기술자격증관리대장 전산화 작업을 진행하며 수기로 자격증을 발급하던 시기에 착오기재되었던 것을 전산에 그대로 이기하면서 생긴 문제, 전산에 이기하는 과정에서의 착오로 인한 문제 등이 간혹 발견되곤 하던 터라 하필 내 땅이 왜?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해가 불가한 것은 아니었다. 


*최두산, 김용준, 이수창.(2004). 지적도면전산화에 따른 공차초과 면적 소거방안 연구. 한국지적정보학회지.


공차 초과 필지는 토지 대장 정정 후 측량이 가능하다.

-나란 사람의 이름이 주민등록증에는 정부리로, 운전면허증에는 정보리로 돼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정보를 바탕으로 운전면허증을 만들었을 테니 당연히 운전면허증을 새로 발급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면허증을 다시 발급받기 전까지 운전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운전면허증에 적힌 이름이 잘못됐다고 해서 내가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는 사실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공차 초과 필지는 토지 소유자가 직접  '토지대장 등록사항 정정(면적) 신청'을 한 이후에 지적도면에 등록된 수치에 따라 대장이 정정되면 그때서야 측량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토지대장 등록사항 정정(면적) 신청'은 법적으로 처리 기한이 지정된 민원이 아니므로*, 사안의 경중에 따라 담당 공무원의 업무 사정에 따라 처리 기한이 무한정으로 늘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서 지적도면에 등록된 면적이 토지대장에 기재된 면적보다 작아 정정 후 토지대장에 표기된 면적이 줄어드는 일이 발생한다. 처리 기간은 그렇다 쳐도 토지 대장에 기재된 면적이 줄어드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이 토지대장 상에 기재된 면적을 기준으로 '평당 얼마'라는 셈법에 의해 땅을 사고 파는데 토지대장 상에 기재된 면적이 줄어든다는 은 평단가가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나 같이 땅을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눈 감고 코 베인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관공서에 접수된 민원은 대부분 처리 기한이 법적으로 지정돼 있다. 국민 신문고 민원의 경우에는 7일에서 14일 이내에 정보공개 청구는 10일 이내에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관할 군청 토지정보과 주무관의 말에 따르면, 토지대장 등록사항 정정(면적)은 법적 처리 기한이 없다.




그렇게 자체적으로 사태 파악을 완료한 나는 토지대장 등록사항 정정을 위해 군청 토지정보과를 찾았고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기분 좋은 이야기듣게 되었다.


"어머! 면적이 늘어나는 경우시네요. 굉장히 드문데 잘 됐어요."


땅이 늘어난 것이다. 물론 실제 면적이 늘어난 게 아니라 대장에 표기된 면적이 늘어난 것이지만 빚 빼고 대부분은 늘어나면 좋은 것들 아닌가? 꾸물거리면 담당 공무원 마음이 바뀌기라도  것처럼 후다다닥 신청서를 작성하고 군청을 나왔다. 그리고 토지대장 등록사항 정정이 완료 됐다는 통보를 받자마자 측량 신청을 했다.


그런데 어라~! 

결제를 하고 보니 당초 68만 원이었던 측량 비용이 82만 원으로 늘어나 있었다.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공차 초과 필지를 측량하지 못하는 이유는 착오 기재된 토지대장 상의 면적으로 측량비용을 산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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