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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Aug 02. 2023

돈으로 지킬 수 있는 재미, 안전, 목숨

휴직일기_2023.07.25.

오랜만에 비 예보가 없는 날이다.

하늘은 그간 쏟아부었던 물줄기를 도로 거두어 올릴 기세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그래 바로 이런 날이다. 물놀이하기 딱 좋은 날!


"얘들아! 물놀이 가자. 얼른 옷 입어!"

"오예~!"


간단한 아침을 먹고 아이들과 물놀이 복장을 후다닥 갖춰 입은 다음 선크림을 바르고 튜브를 챙겨서 인근에서 시설 좋기로 소문난 공공 물놀이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쩌면 좋은가?

물놀이장에 도착하니 1m가 넘는 튜브는 반입할 수가 없단다. 차 안에서부터 아이언맨 보트를 누가 몇 번 탈 것인지 두 남매가 신경전을 펼쳤는데, 반입 자체가 금지 돼 있다는 안전요원의 말에 아이들은 금세 풀이 죽고 말았다.

그래도 잘 튀어 오르는 공처럼 뛰어난 회복탄력성을 지닌 아이들이라 금세 물놀이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물놀이를 즐기는 것 같았다. 튜브 없이 노는 아이들의 그림이 약간 허전해 보이긴 했지만 한 여름 더위를 피해 저렴한 가격으로 근교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게 찜통 같이 달아오른 집에서 서로 끈적이는 몸을 부대끼는 하루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공공 물놀이 시설에서는 보기 힘든 초대형 워터슬라이드를 비롯해 깨끗한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이 정도면 지난달에 다녀온 사설 물놀이장에 견주어 손색이 없지 않은가? 저렴한 비용으로 아이들에게 알차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 뭔가 조금 지혜로운 엄마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에게 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여기 참 괜찮다. 시설도 깨끗하고 말이야. 재밌지?"

"아니. 저번에 간 곳이 더 재밌어. 튜브도 탈 수 있고 더 넓고."


젠장 이 녀석은 매번 틀린 적이 없다. 여행지에서 묵었던 숙소, 이용했던 놀이시설,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마다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 마냥 가장 비싼 대가를 지불한 것에 가장 후한 점수를 주었다. 들이는 돈이 많을수록 아이의 만족도도 높았기에 돈 들인 보람이 있다고 봐야 하나? 하지만 그 보람을 찾기 위해 매번 시설 좋고 값비싼 곳, 비싼 음식점만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 주머니는 노력에 비해 두텁지 않았고 아이들과 보내야 할 시간은 그에 비해 매우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럼 우리 내일은 작년에 갔던 00 물놀이장에 가보자. 거기는 아이언맨 튜브 쓸 수 있었잖아."


아이의 솔직한 답변에 할 말을 잃고 있던 찰나, 작년에 다녀온 공공물놀이장이 생각났다. 튜브 사이즈에 제한을 두지 않아 아이언맨 보트를 타고 신나게 놀지 않았던가? 물론 거기서 똥이가 안경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대형 워터파크 이용료에 버금가는 돈을 썼지만 에어 바운스로 돼 있는 워터슬라이드도 꽤 괜찮았고 샤워실도 깨끗한 편이었다. 똥이도 그곳을 기억하고 있는지 밝은 표정으로 동의했고, 누나가 가는 곳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가는 빵이도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뒷 날 아침 역시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서둘러 물놀이장으로 향했다. 아이언맨 보트에 바람을 넣어 호기롭게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데 안전요원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민원이 들어와서 오늘부터 대형 튜브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어요. 대형튜브는 풀장 반입이 불가합니다."


아이언맨 보트를 반 뺏기다시피 안전요원에게 내어 준 아이들의 얼굴이 거지반 울상이 됐다.


"하는 수 없어! 규칙은 지켜야지! 대신 엄마가 신나게 놀아줄게."


아이들보다 먼저 참방 소리를 내며 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왕년 수영 연수반 출신의 발차기 실력으로 물폭탄을 퍼부었다. 아이들은 금세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나를 향해 맹공을 펼쳤다. 항복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항복! 항복!"


항복을 외치며 일어나는데 어라 바닥이 너무 미끄럽다.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질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바닥에 손을 짚었다.


"아으~악!"


손을 잘못 짚었다. 엄지손가락이 바닥면에 그대로 미끄러지며 꺾였다. 엄마의 비명에 달려오던 빵이는 쿵하고 미끄러지며 물속을 허우적거렸다. 다행히 물은 얕았고 몹시 가까운 거리에 디디고 설 바닥면이 있다는 것을 허우적거리던 팔과 다리가 바로 알아챘기에 빵이는 금세 일어서서 눈에 어린 물기를 닦아냈다.


"괜찮아?"

"응. 엄마는?"

"엄마는 손가락이 좀 아프네. 나가서 조금만 쉴 게."

"응. 조금이다."

"미끄러우니 조심해서 놀아."


빵이는 누나와 바로 신나게 놀았고 나는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부여잡고  풀장을 나왔다. 쉼터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손가락이 퉁퉁 붓기 시작했다. 작게나마 까딱까딱 움직이는 것을 보니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엄지가 다치니 주먹을 쥐는 것도 병뚜껑을 따는 것도 옷을 갈아입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병음료를 마시려다 포기하고 물놀이장을 둘러봤다. 기다란 고무호스에서 흘러나온 물이 풀장에 계속 채워지고 있었다. 여과기나 정수시설은 당연히 없었다. 풀장에서 나와 샤워도 못 하고 여름 더위에 몸을 고스란히 말렸는데 피부가 간지럽지 않은 것을 보면 물에 염소를 희석하지도 않는 모양 같았다. 염소가 섞이지 않고 깨끗한 물이 게나마 계속 공급되니 어찌 보면 일 년에 한두 번 물갈이하는 수영장보다 피부에는 건강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염소가 희석되지 않은 수돗물이 햇볕 아래 두 주 이상 고여 있으면서 바닥에 물이끼가 끼는 게 문제였다. 풀장 안에 들어가 있는 안전요원들은 이미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는지 풀장 내에 착용이 금지된 크록스를 신고 서 있었다.


몇 해 전, 방학을 맞아 전국 여행을 다니던 세 모녀가 방화범이 일으킨 화재로 여관방에서 참변을 당한 사건이 생각났다. 뉴스에서 그 사건을 보도하던 앵커는 사망한 엄마가 아이들 교육을 위해 매년 방학 동안 전국을 여행해 왔으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기에 화재에 대한 대비가 잘 되지 않은 싸구려 여관을 숙소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하는 엄마의 마음과 넉넉지 못한 형편을 대비해 그들의 죽음을 더 가슴 아프게 보여주고자 함이었을까?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꿈을 꾸지 말라고 그 꿈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였을까? 후자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지킬 수 있는 재미와 안전, 목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일어나 아이들에게 갔다.


"얘들아 바닥이 많이 미끄러워. 조금만 놀다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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