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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Jul 26. 2023

마이박스가 가득 찼습니다

휴직일기_2023.07.10.

사진을 PC나 외장형 하드에 따로 보관하지 않다 보니 마이박스는 유일한 사진저장고다. 마이박스와 연동된 휴대전화에서 사진이 자동 업로드되도록 설정해 놨기 때문에 저장고를 여유 있게 잘 쓰려면 가끔씩 들어가서 버릴 것은 버리고 살릴 것은 자리를 잘 찾아 넣어줘야 한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마이박스 정리를 제법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2년 전, 아이들 아빠 얼굴이 나와 있는 사진을 다 비워낸 이후 마이박스 용량 걱정은 당분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정리하는 일을 잊어버린 듯하다. 그렇게 2년 동안 초점과 구도가 하나도 맞지 않는 사진을 포함해 휴대전화 갤러리를 스쳐간 모든 사진들이 마이박스에 그대로 쌓였수용 치를 초과한 마이박스는 휴대전화가 보내는 자동 업로드 시도를 거절하며 사진들을 뱉어버렸다.


마이박스를 정리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머리가 지시하는 내용을 마음이 쉽게  따르지 않았다. 인화된 사진을 보관하는 무거운 사진첩이 있는 시절도 아니고 마우스에 얹힌 손가락만 까딱이면 되는데 말이다. 그렇게 열흘 가까이 뭉그적거리다 마음을 내어 마이박스를 열었다. 사진 저장고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심령사진을 버리고 쓸모를 다한 메모성 사진을 지워갔다. 지우면 지울수록 지난 시간 속으로 걸어가는 듯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2년, 3년, 4년 전으로.....


나는 그렇게 더 먼 과거로 나갔다. 그러다 지금의 빵이와 똑 닮은 똥이, 친정 거실에 앉아 슬며시 미소 짓고 있는 빵이를 만났다. 아이들 얼굴을 보자니 가슴이 먹먹해지며 후회가 밀려왔다.

말캉말캉하고 보들보들한 생명체들을 뜨겁게 사랑해 주지 못하고 지나온 내가 원망스러웠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 일이 있기 전에도 나는 항상 억척스럽고 분주하게 움직였고 돈이나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같은 것에 미쳐 있었다. 아이들은 주로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냈고 아이들이 커 가는 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것이라곤 수유하기, 이유식 만들기, 씻기고 재우기처럼 몸으로 할 수 있는 몇 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이마저도 밀린 숙제처럼 해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몸을 포기하고 아이를 위해 젖을 먹였다고, 바쁜 중에도 직접 장을 봐와 손수 이유식을 만들었다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나의 잠을 포기했다고 당당히 말하기도 했다. 좋은 성분의 분유와 잘 만들어진 이유식을 사 먹이고 아이를 재우는데 효과적이라는 육아아이템들을 사용해 육체의 노고를 줄이는 대신 아이들에게 마음을 더 쓰는 게 나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명분이라는 껍질만 부여잡고 살았다.


지금의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 전보나 주말근무가 없는 직장으로 이직하겠다는 명분에 의지해 '휴직'이라는 단어 앞에 붙은 '육아' 딱지를 떼어 저 멀리 던져버린 지 오래였다. 휴직급여가 나온다지만 가계 적자를 줄이는데 기여할 뿐 크게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여름휴가 계획도 잡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독서, 운동, 공부 같이 나 좋아하는 걸 하겠다고 아이들 공부는 신경 쓰지 않은지 오래였다. 등하교를 같이하고 간식과 밥을 챙겨주고 가끔 근교로 나들이를 가는 게 엄마 노릇의 전부인 듯 미안함이나 죄책감 없이 넉 달을 보냈다. 또 얼마나 짙은 후회를 하려고 이랬단 말인가?

 

곧 있으면 아이들 방학이다. 떼 버렸던 '육아' 딱지를 찾아 올 기회가 생겼다. 아이들을 위한 소소한 방학계획을 세워본다.


아이들과 함께 매일 동네 작은 도서관에 간다

물놀이를 네 번 이상 한다

매일 아이들 공부를 봐준다

2박 3일 가족여행을 떠난다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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