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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Jul 17. 2023

길 잃은 꼴뚜기

휴직일기_2023.06.18.

 서른여섯 되던 해, 유난히 무덥던 여름날에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치렀던 면접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뒤 여름, 나는 면접용 정장까지 빌려 입고 어색한 모습으로 면접 대기실에 들어서고 있었. 빌려 입은 44사이즈 치마의 지퍼가 허리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반쯤 열려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면접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복장도 결연하기 그지없었다. 골반까지 내려오는 재킷이  열려 있는 하의 가려주었기에 그냥 봐서는 준비된 면접 대상자였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 하나만 놓고 보자면 말이다.


 네 명씩 조를 이루어 치러지는 그룹 면접에서 조선나이 마흔 하나 '나'란 사람의 존재감은 확실히 달랐다.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생선들 사이맥없이 누워 있는 꼴뚜기 한 마리 같다고나 할까? 면접관들의 눈에는 길을 잃고 돌아다니다 물고기 잡는 그물에 따라 들어온 정신없는 녀석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더 물었을 것이다. 두 번째 공통질문이 지원 사유였으며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지원자가 돌아가며 이 기관에 지원한 사유를 구구절절 말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가 아니라 얼빠진 꼴뚜기의 진짜 속내를 알고 싶어서 굳이 한 번 더 물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리님께 한 번 더 질문하겠습니다. 공사에 재직 중이신데, 좋은 직장을 버리고 저희 여성회관에 지원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가 몇 년 전 한부모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우연한 계기로 많은 한부모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부모 여성이 사회진출을 통한 경제적 자립을 절실히 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부모이다 보니 그들이 당면한 일이 제 일처럼 와닿았고 그들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여성회관 직원채용 소식을 접하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면접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묘하게 반짝이는 눈빛이 내 속내를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기관에서 더 뜻깊고 중요한 일을 할 기회가 많을 텐데요. 뭐, 잘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거짓 답변은 아니었다. 이직을 결심한 수많은 이유 중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릴 한 가지만 말했을 뿐이다.


 이혼을 하고 정말 우연히 이혼한 여자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예고 진학을 앞둔 딸아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서너 개씩 하는 엄마, 어린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구직활동조차 여의치 않다는 엄마, 복직 후 일주일 만에 퇴사 통보를 받았다는 엄마는 모두 취업을 통한 경제적 자립이 절실한 한부모였다. 나 역시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직장을 다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들의 절실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마음을 다해 일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정해진 월급 외에 정신적 보상도 따를 듯 했다. 시에서 관리하는 이 여성회관은 여성의 사회진출 및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각종 직업훈련 및 복지사업, 취업지원을 하는 곳으로 내가 막연히 꿈꾸던 바를 실현할 수 있는 곳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년까지 한 곳에서 일할 수 있으며, 급여가 적은 만큼 업무의 범위도 좁고 단순해 보였다. 전보의 불안에서 벗어나 조금 더 적게 벌더라도 조금 적게 일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 기관 그러니까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기관은 전국 순환근무를 원칙으로 한다. 오늘 서울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내일부터 대구에서 근무할 수도 있고, 오늘 광주에 있던 사람이 내일부터 부산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입사 5년 차, 본부에서만 4년 가까이 근무했다. 이는 복직을 하고 머지않아 자리를 옮기게 될 수 있다는 것이고 타지로의 출퇴근은 평일 아이들과의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시간 외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사업 특성상 지금도 잠든 아이들을 보며 출근을 하는데 타지로 발령이 나면 대체 몇 시에 나가서 몇 시에 들어와야 하는지... 가까운 부산으로 발령이 난다 해도 길바닥에 버리는 돈과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지금 보다 연봉이 조금 줄더라도 길바닥에 버릴 내 시간과 맞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회관은 올 초에 사놓은 아파트와 거리가 가까워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 아이들 밥이라도(아이들이 방학이 되면 말이다) 챙겨주고 나갈 수 있을 듯하고 걸어서 학교, 학원, 도서관까지 모두 이용이 가능해 아이들 픽업문제로 걱정할 이유도 없었다.


 면접관의 독심술 능력 때문인지 나이나 자격증과 같은 개인적 역량(취업 전선에서 나이는 개인이 가진 역량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의 문제였는지 모르지만 결국 나는 최종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보름 정도 절망의 늪에서 허덕였지만 이젠 제법 괜찮다. 스티브 잡스가 '여정은 보상'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낙방 덕분에 앞으로도 당분간 휴직 일기는 계속될 것이고, 결국에는 어려운 이직과 두려운 복직 사이에서 적당한 답을 찾아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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