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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Jun 26. 2023

휴직자와 퇴직자

휴직일기_2023.06.13.

신문고 알림이 오면 온몸에 있는 땀구멍이 일시에 열렸다 닫히며 심장 박동이 흐트러지곤 했다. 휴직 중이라 파블로프의 개처럼 생리 반응이 바로 일어나지는 않아도 배정된 민원이 있다는 저 문구  신경 쓰이는 존재.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억울하거나 궁금하거나 불편하거나 불쾌한 감정을 동력으로 쓴 글이 신문고 민원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글 속에 담긴 감정과 사안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걸 알아서.

정확히 말하면 신문고 민원을 최대한 가볍지 않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에 가깝다. 답변받아보는 분의 마음을 생각해 글자 한 자 한 자에 신경을 쓰고 미처 모르는 부분이 있어 잘못된 답변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규정을 거듭 살피느라 어떤 민원 답변은 기한을 꽉 채워 내보내기도 한다. 적고 보니 봉사 정신 투철한 공직자의 전형 같은데 사실은 내 마음이 다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이다.



대략 9년 전, 나는 지금 몸 담고 있는 곳보다 규모가 작은 정부산하기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건설기계나 조리, 미용과 같은 생계밀착형 국가기술자격시험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기관이었는데 시험접수일이나 합격자 발표일이 되면 민원 창구가 유난히 붐비곤 했다. 인터넷 활용이 자유롭지 못한 분들이 많음에도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원서접수와 자격증 발급 신청이 온라인으로 일원화되었고 도움을 청할 자식이나 지인이 가까이 없는 분들은 민원 창구를 두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0km, 20km, 멀게는 30km 떨어진 위치에서 모여든 분들은 공교롭게도 같은 훈련기관에서 직업훈련을 받은 동기생이거나 시험장에서 마주친 이력이 있는 분들이셔서 쉽게 말문을 트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곤 했다. 다시 말해 접수 초일이나 발표일 아침 9시부터 사무실은 재래시장보다 더 왁자지껄한 공간이 된다는 말이다. 사명감 같은 것은 다 내려놓고 그냥 월급쟁이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내 꼴이 시장 한가운데 놓인 접수하는 기계, 자격증 발급 신청을 하는 기계가 된 것 같았다. 차라리 기계라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예외 없이 동일한 공정만 신속하게 처리하고 욕 들어 먹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드 결제를 해야 하는데 카드 비밀 번호를 잊어버렸다고 하는 분, 자격시험 접수 포털의 아이디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신 분과 같은 변수를 만나게 되면 나의 일 처리는 한 없이 느려졌고 기다림을 참지 못한 일부 민원인 분들의 비난이 화살같이 쏟아졌다.

 그 어르신을 만난 것도 합격자 발표가 있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 스무 분 가까이가 한꺼번에 사무실을 찾으셨고 사무실은 이내 왁자지껄해졌다. 어르신들께서 주고받는 말을 들으니 오신 분들은 중공업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과정에 함께 하신 분들로 과거에는 근대화의 기수, 얼마 전까지는 억대 연봉근로자로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여자 셋이 모였을 때 접시가 깨진다면 남자가 셋 이상 모이면 어떻게 될까? 그 기운과 허세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 옆에 있는 사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다. 어르신 중에 몇 분은 동료들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자랑이라도 하듯 민원 처리를 하는 내내 반말을 하셨고 또 어떤 분은 '어이~! 저기~! 아가씨~!'와 같은 호칭을 써가며 주차가 힘들다, 시설이 노후했다는 등의 불만을 털어내셨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참을 수 있었다. 그냥 봐도 내 부모님 또래 어른들이셨고, 내 이름이나 직책을 모르시니 딱히 부를 호칭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며, 주차가 힘들고 시설이 노후한 것은 사실이며 그걸 지금 창구 앞에 앉아 있는 나 외에 누구에게 딱히 말할 곳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때 나는 괜찮은 게 아니라 참을 수 있는 상태, 어르신들의 무례한 태도를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스스로 되뇌며 불쾌함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상태였다.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은 채 버티고 있는 상태에서 그 어르신의 차례가 되었다. 어르신이 알려준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자격포털에 로그인을 하고 기본 정보들을 입력한 후 카드결제만 하면 신청이 모두 완료될 터였다.

 "선생님, 결제하실 카드 주세요."

 "카드는 무슨..."

 어르신은 말씀을 마무리하시지 않고 내 쪽을 향해 오만 원짜리 지폐를 던지셨다. 지폐는 사무실을 가득 채운 공기의 저항을 받으며 천천히 내 앞으로 떨어졌다. 눌러 왔던 화가 머리를 뚫고 뻗쳐 올랐지만 어르신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었다. 대신 오만 원짜리 지폐를 잡아 어르신 앞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는 것으로, 앙칼진 말투로 내가 느낀 불쾌함을 드러냈다.

 "저는 선생님이 직접 못 하시는 인터넷 신청을 대신해 드리는 거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바로 결제하는 거라 현금은 안 됩니다."

 "카드가 없다니까!"

 "밑에 은행 가서 돈 바꿔 오세요. 그럼 제 카드로 대신해 드릴게요. 필요하면 갔다 오세요."

 어르신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구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나를 매섭게 내려다보았다. 마치 밥상을 뒤엎기 직전의 대발이 아버지 같은 얼굴로... 그런다고 가슴을 졸이거나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이곳엔 밥상도 없고 무엇보다 나는 그 어르신 부인이나 자식도 아니니까 말이다.

어르신은 한참을 그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신 뒤 의자를 슬쩍 걷어차고 나가셨다. 그리고 며칠 뒤 국민신문고 민원이 접수됐다. 그 어르신의 따님이 대신 올린 민원이었는데 글의 요지는 이랬다.

아버지가 퇴직 후 자격증 취득 준비를 오래 하셨다.
자격증 취득하고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데 자격증 신청을 대신하던 직원의 불친절한 응대로 아버지가 자괴감이 들고 좌절감을 맛보았다.
삶의 활력을 잃고 며칠 동안 앓아누우신 아버지를 대신해 글을 올린다.
해당 직원의 사과와 그 직원에 대한 기관 차원의 엄벌을 바란다.

기가 차고 코가 찰 지경이었다. 당신 아버님께서 내게 한 행동은 전혀 언급도 없이 일방적인 사과만을 바라다니..... 딸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고 있기나 한 걸까? 나의 말투나 행동에 대해서 사과를 하더라도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장 접수가 없어진 상황과 그날 일어난 일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한 뒤 짧은 사과의 말을 덧붙여 민원 답변을 완성했다.


그리고 며칠 뒤, 과장님이 나를 불렀다.

 "정대리, 나도 상황을 다 알고 정대리가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걸 아는데..... 일이 좀 커질 것 같아. 그 어른하고 그 어른 따님이 정대리 민원 답변에 더 화가 나셨어. 정대리가 오늘 안에 전화해서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일을 크게 만드실 모양 같아."

난처한 과장님의 얼굴을 보니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장님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차분한 목소리의 젊은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젊은 여자는 나의 불친절한 언행과 공공기관의 존립 목적과 이유(우리가 낸 세금으로 공공기관을 두는 건 국민을 돕기 위함이며 국민이 너의 서비스에 불쾌감을 느꼈다면 너는 그 기관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식이었다)에 대해 조곤조곤 말하더니 아버지를 바꿔드릴 테니 직접 사과를 하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그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머리끝이 곤두서고 어금니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선생님, 그날 지폐를 바꿔 오시라고 말씀드린 건 제 카드로라도 결제를 해서 처리를 빨리 해드리려는 의도였는데 제 행동과 말투 자체가 선생님을 불편하게....."

말을 끝맺기도 전에 어르신 따님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나왔다.

"사과도 하나 못 배웠나? 변명을 하래요? 사과랑 변명도 구분 못 하는 사람이 무슨 그런 자리에 앉아 있어. 우리는 당신 이야기가 아니라 사과를 듣고 싶다고... 당신이 어쨌건 우리 아버지가 마음이 상하셨으니 사과를 하라고. 사과만 하면 끝날 걸 문제 어렵게 만드네."

목구멍이 뜨거워지며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통곡에 가까운 사과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따님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리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어르신이 하신 마지막 말씀은 분명히 기억할 수 있다.

"자식 같은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내가 나이가 먹어 그런가 보오. 시간이 지나면 내 마음을 조금 알 거야. 나도 미안하오. 전화 끊겠소."


그날 이후, 나는 민원인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며 살았고 그 덕에 한 차례 민원응대 우수직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르신이 말씀하신 시간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인 나의 친절이란 진정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어르신의 마음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급히 프린터와 스캐너를 사용할 일이 생겼는데 PC방도 없는 시골에서 도움을 청할 곳이라곤 면사무소와 복지센터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면사무소 정부망을 사용하고 있는 데다 취급하는 개인정보도 많을 터라 외부인 PC 사용이 어려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한테 찾아가 스캐너와 프린트를 좀 쓸 수 있냐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스캔할 종이 두 장을 챙겨 복지센터로 갔다.

똑똑.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스캔이랑 프린트를 좀 부탁할 수 있을까요?"

"음..."

난감해하는 직원 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선례를 남기면 누구든 와서 부탁을 할까 봐 선뜻 답을 못 하시는 것 같아 마음속 말을 대신 해 드리고 물러날 계획이었다.

"선례를 남길까 봐 그러시죠? PC방도 없고 마땅히 생각나는 곳이 없어 왔는데 시내까지 한 번 나가보겠습니다."

"네. 선례라기보다 공적인 업무를 보는 공공시설에서는 외부인에게 스캔한 자료를 보내고 그러다가 해킹당할까 봐 못 해드려요. 제 맘 같아서는 해드릴 텐데 공적 업무 특성상..."

공적 업무 운운하며 거절의 명분을 내세운 것도 모자라 교묘하게 관계의 우위를 점하는 듯한 직원의 말을 듣는데 갑자기 뱃속 창자가 꼬이는 듯했다.


'아니. 나는 정부산하 공공기관 다니면서도 민원인한테 스캔 파일 전송하는 게 해킹 위험 있다고 해주지 말라는 시달을 받은 적이 없는데... 운동복 입고 낮에 돌아다닌다고 나를 동네 백수쯤으로 아나? 저걸 변명이라고 하나?'


순간, 복지센터 직원이 한 답변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려볼까 하는 마음과 초라한 내 행색과 그 잘난 직장에서 도망친 내 처지가 한 덩어리가 되어 탱탱볼처럼 머릿속을 마구 헤집고 다니는 걸 느꼈다. 그리고 울림처럼 그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지나면 내 마음을 조금 알 거야.'


나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복지센터를 나왔다. 인정하긴 싫지만 알량한 명함이 나의 후광이 되어왔음을 알았다. 내가 결국 그 명함을 버리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9년 전 그 시절이  어른에게는 자신을 환하게 비추던 명함이 사라진 온통 암흑뿐인 시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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