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선 일이 S급이라도 소통이 B급이면 B급 인재다

화려한 언변이나 훈련된 제스처 없이도 커뮤니케이션 잘할 수 있는 방법

by 데카당스

"회사에선 일이 S급이라도 소통이 B급이면 B급이다"


신입 시절, 같은 학교 선배였던 당시 인사부 차장님이 해주셨던 말입니다. 당시에도 느낀 바가 있어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외국 나와 일을 해보니 더 절실히 느껴지더군요. 제가 관찰한 바로는 소통만 가지고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일만 잘해서 성공하는 건 더더욱 어렵더라고요.


특히나 저 같은 내향인들에게 적합한, 미국회사 15년간 4개국에서 일하며 배운, 화려한 언변이나 훈련된 제스처 없이도 커뮤니케이션 잘할 수 있는 팁들을 몇 가지 알려드릴까 합니다.




1. 임원 발표 때는 Plan B를 준비하자


팀원들 모두 밤잠을 설치고 임원 발표를 준비했어요. 비록 월례회의의 15분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부서의 핵심사업에 대한 비전을 보고하는 중요한 발표였지요. 잔뜩 긴장하고 회의에 들어가는데 이게 웬걸, 임원이 다른 회의 때문에 10분이나 늦은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앞 부서 발표가 길어지면서 당신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은 1분 남짓. 당신은 당황해서 버벅거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때로는 장비가 작동을 안 한다던가, 여러 가지 다른 이유 때문에 발표가 짧아지는 경우도 많아요.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런 일은 더 자주 발생해요. 이런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으려면, 특히나 중요한 발표라면 반드시 Plan B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따로 슬라이드나 자료를 준비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발표자료 중에 이미 Executive Summary를 만들었다면 해당 페이지만 가지고도 중요한 내용을 다 설명할 수 있도록 짧은 버전의 발표를 연습해 놓으면 됩니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발표에 대한 깊이도 생기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도 있는 일석이조의 방법이에요.


2. 설명할 땐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저도 많이 실수하던 부분인데, 사람들은 자주 자신이 아는 만큼 상대도 알 거라고 은연중에 가정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개념도 슥슥 넘어가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차트도 상대가 이해할 거라 생각하고 결론부터 던지고 봐요.


모두가 바쁜 회사생활 중에 가장 부족한 자원은 다름 아니라 "주의집중"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맞닥뜨리면 어떻게 될까요?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무시하거나 멍해지기 일쑤거든요. 그래서 "어른들한테 이런 것까지 설명해 줘야 돼?"라는 것까지도 설명을 해줘야 됩니다.


예를 들어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은 차트에 있는 인사이트로 바로 넘어가는 거예요. 일상적으로 자주 쓰는 차트가 아니라면 X축은 무엇이고 Y축은 무엇인지, 표시된 값은 무엇이고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간단한 차트라도 청중에게 이해시키기가 무척 어려워요.


특히나 어려운 개념, 숫자, 논리 등이 나올 때 더 주의해서 쉽게 설명하도록 노력해야 해요. 상대방이 6살짜리 조카나 아들 딸이라고 생각하고 설명하시면 그것만으로도 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이 될 거예요.


3. 질문 없는 발표는 망한 발표


스크립트로 잘 짜여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농담까지 조율해서 정확하게 끝낸 완벽한 발표와, 오히려 허점 때문에 중간중간 질의응답으로 흐름이 끊겼던 발표. 둘 중에 어떤 발표가 잘한 발표일까요? 저는 두 번째 발표가 훨씬 성공적인 발표라고 생각합니다.


실패한 발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발표입니다. 그럼 성공적인 발표는? 발표를 들은 사람들이 내용을 잘 기억하는 그런 발표겠죠. 생소한 내용을 그것도 듣고만 있으면 기억을 잘할 수 있을까요? 기억을 더 잘할 수 있게 하려면 당연히 청중이 참여를 해야 하고, 질문이야말로 청중이 할 수 있는 참여 중에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질문이 없는 이유는 발표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청중의 관심을 못 끌었거나 제대로 이해를 못 해서라고 생각해야 돼요. 그래서 저는 질문 없는 발표는 망한 발표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이 없으면 찾아가야겠죠. 발표 중간중간 질문을 요청해서 상대방이 이해하는지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기억에 남는 발표가 될 수 있어요.


4. 발표 자료 첫 장은 늘 Executive Summary를 넣자


논리적인 주장을 위해 빌드업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닌 설득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인 경우에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시중에 나온 커뮤니케이션 팁들을 보면 두괄식으로 주장을 하라고 말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말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어요. 어떤 주장을 하려면 논리의 빌드업이 필요한데 두괄식으로 말하라니요?


그러나 회사를 10년 넘게 다니고 어느 정도 직급이 올라가니 서서히 그 말이 이해가 되더군요. 두괄식으로 소통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주의력 결핍" 때문이었거든요.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보통 뇌 속에 매우 적은 공간만 남아있거든요.


그래서 발표 자료의 첫 장은 늘 Executive Summary를 넣고, 주장을 가장 먼저, 그 후에 번거로워도 다시 빌드업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청중이 주장을 기억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아무래도 발표를 들으며 주의집중이 떨어지기 전에 주장을 듣기 때문입니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들을 때 조금 더 집중합니다. 주장하는 바를 들었을 때 "왜 저런 주장을 할까"라는 마음을 은연중에 갖고 근거를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회의시간이 줄더라도 제일 중요한 "메시지"는 전달할 수 있습니다. (위의 1번 참고)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미괄식이 맞는 것 같지만 두괄식 발표나 소통이 훨씬 효과가 좋습니다. 또한 Executive Summary 페이지를 만들면 청중이 해당 자료를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기가 좋습니다. 전체 자료가 아니라 Executive Summary 페이지만 전달하면 되거든요.


5. 맘에 안 들어도 회사 템플릿이 있으면 사용하자


많은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이나 보고서 템플릿을 만들어 활용합니다. 그러나 전문 디자이너가 만든 템플릿이 아닌 이상 1%, 아니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에요. 뭔가 내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합하지도 않은 것 같고.


올해 15년 차인 저는 무조건 회사 템플릿만 사용합니다. 예전에는 저만의 템플릿을 많이 만들어 사용했어요. 나름 파워포인트 귀신이란 자부심도 있었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디자인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생각 가지신 분들 많을 거예요.


회사 템플릿만 사용하는 건 바로 상대방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절대 회사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사용하는 게 아니에요. 회사 템플릿은 상대방이 보다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익숙하다는 건 그만큼 뇌의 용량을 적게 사용한다는 것이고, 그만큼 상대방이 내용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상대방이 메시지에만 집중하게 해야지, 화려한 디자인이나 새로운 디자인에 정신 팔리게 하면 안 되거든요. 비슷한 맥락으로 차트는 익숙한 바차트, 라인차트, 파이차트만 쓰고, 폰트도 웬만해서는 회사 템플릿의 폰트만 사용합니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커뮤니케이션 자료의 디자인적인 부분에 덜 집중하고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거든요.


6. MECE, Action Title 같은 전략컨설팅에서 쓰는 기법 쓰지 말자


프레젠테이션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MECE, Action Title 등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거예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략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사용한다고 알려진 방법이죠.


MECE는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라는 뜻으로, 쉽게 말하면 어떤 대상을 나눌 때 부분의 합이 전체를 커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미국, 영국은 MECE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다른 나라들이 있기 때문이죠. 반면, 남자-여자, 과거-현재-미래는 MECE에요. 먼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고(Mutually Exclusive), 합이 전체를 커버(Collectively Exhaustive) 하기 때문이죠.


이 기법이 논리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이른바 "허점"이 없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동양 사람들은 마늘을 많이 먹는다라고 하게 되면 반대로 서양은 어떠냐, 중동은 어떠냐 이런 식으로 반발이 나올 수 있겠죠. 또한 현재와 미래만 가지고 주장을 한다면 과거의 사례는 어땠냐고 물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MECE를 추구하면 "논리적 완결성"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실무에서는 이렇게 딱 떨어지는 것을 찾기가 어렵죠. 중복도 많고 자료가 부족해서 전체를 커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MECE를 추구한다면, 억지 주장이나 논리적 비약이 될 수 있어요. 또한 MECE에 집중한 나머지 더 중요한 메시지나 설득력을 잃을 수 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메시지나 설득력에 집중할 시간에, MECE를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게 돼요.


Action Title은 반면 제목에 주장을 담아야 한다는 간단한 얘긴데, 예를 들어 발표자료의 제목을 "분기별 매출 현황"이 아니라 "분기별 매출이 감소하고 있으므로 인센티브 제도 점검이 필요하다"와 같이 액션을 담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얼핏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 방식도 실무에서 사용하기에 많은 문제가 있어요.


가장 먼저 모든 슬라이드에 Action이 있을 수는 없겠죠. 억지로 Action을 넣으려 하면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게 될 거예요. 또한 가장 큰 문제는 커뮤니케이션 상대방이 이런 타이틀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분기별 매출 현황"이 쿨하거나 섹시하지는 않지만, 익숙하잖아요. 이런 제목에는 아 무슨 얘기를 하겠구나 하는 맥락이 이미 대부분 직원들의 머릿속에 들어있어요. 그럼 뭐다? 뇌용량을 덜 잡아먹으니까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겠죠.


저는 실무에서 MECE나 Action Title 같은 거 말하는 직원이 있으면 일단 걸러들어요. 내용에 형식을 맞추는 게 아니라 형식에 내용을 맞추는 친구들이거든요. 형식주의에 빠지다 보면 얼핏 그럴싸해 보이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평범한 발표가 되어버린다는 거 잊지 마세요.


7. 대본 외우지 말고 옆 직원한테 내용을 설명하자


종종 정치인들이 대본을 만들고 프롬프트를 보며 연설을 하는 장면을 봅니다. 매우 자연스럽고 귀에 쏙쏙 박히죠.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엄청난 훈련을 받을 거예요. 우리가 정치인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발표할 때 대본 만들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연습하는 걸 추천해요.


먼저 대본을 만들게 되면 자연스러움이 떨어지고 발표가 뭔가 어색해져요. 다른 사람과 얘기할 때 글을 읽으면서 얘기하진 않죠. 그래서 대본을 읽게 되면 훈련받지 않는 이상 어색할 수밖에 없어요. 더 큰 문제는 임기응변이 어려워진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갑자기 중간에 건너뛰고 발표를 하게 된다던가, 질문이 들어오게 되면 대본을 우선 찾게 되기 때문에 우왕자왕하게될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럼 중요한 임원 발표를 앞에 두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내용을 잘 모르는 옆 직원한테 설명하는 게 제일 좋은 연습이군요. 맥락을 잘 모르는 직원에게 설명하면 우선 쉽게 설명해야 하겠죠. 그렇게 쉽게 설명하다 보면 발표 자체가 알아듣기가 쉬워져요. 또한 여러 돌발질문들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질의응답 연습도 될 거예요. 이렇게 몇 번 연습하는 게 대본을 달달 외우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8. 형용사는 최대한 쓰지 말고, 가능하면 수치로 표현


글은 무조건 짧을수록 좋습니다.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아요. 뇌 용량을 최대한 적게 차지하기 때문이죠. 어떻게 하면 글을 짧게 쓰고 가독성을 올릴 수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형용사를 최대한 절제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자랑스러운 우리 회사가 이번 어려운 프로젝트에서 커다란 성과를 냈습니다"라는 글은 "우리 회사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냈습니다"라고 바꿔도 내용이 전혀 바뀌지 않아요. 반면 글이 간결해지면서 뇌용량을 적게 차지하죠.


그런데 엄청난 성과를 냈다는 걸 강조하고 싶으면 어떻게 할까요? 그냥 성과를 냈다기엔 뭔가 아쉽죠. 이럴 땐 수치를 사용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앞의 문장을 "이번 프로젝트로 매출이 20% 상승했습니다"라고 말하면 굳이 "엄청난"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성과를 객관적으로 강조할 수 있겠죠. 또한 수치를 쓰면 프로페셔널해 보여 말하는 이에게 더 신뢰가 가겠죠.


9. 커뮤니케이션 초반에 목적을 명확히 밝히자


회사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설득과 정보제공 둘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엔 목적을 밝히지 않아도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정보제공이 목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설득을 한다던가, 설득이 목적인데 정보제공을 주로 한다던가 하면 상황이 어려워지더라고요.


따라서 회의든 발표든, 초반에 목적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설득이 목적이라면 "본부장님, 이번 프로젝트에서 A사가 아니라 B사를 협력사로 하는 게 더 나은 이유를 설명드리고자 합니다"처럼 명확하게 목적을 설명하면 상대방이 자세를 고쳐 앉고 듣겠죠. 반면 정보제공도 마찬가지로 "이번 발표에서는 규정 변경에 대해서 설명드리고자 합니다"처럼 목표를 명확히 하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에 좋겠죠.


10. 프로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내향인인 저는 퍼블릭 스피치를 매우 두려워했어요. 발표 때마다 두려워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고, 발표할 때면 온몸이 떨리는 것 같았어요. 주니어 시절 한 번은 그렇게 떨면서 발표를 마치고 다른 직원에게 제가 떨었냐고 물어봤는데, 정말 의외의 답을 하더라고요. "전혀 안 떨던데?"


그때 깨달았어요. 속으로 어떻게 느끼든 겉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르구나


프로란건 이런 거 같습니다. 뒤에서는 허둥대고 잘해보려 발버둥 쳐도, 앞에서는 태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 마치 우아한 백조가 물 위에 떠있기 위해 끊임없이 물장구를 치는 것처럼, 겉으로 보기에 프로다워야 프로가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그 프로다움이 여러분의 소통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어줄 거고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깔끔한 복장과 정돈된 인사말. 이 정도만 준비해도 아마추어 소리는 안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프로페셔널한 이의 발언이라면 더 귀를 기울이게 되겠죠




오늘 알려드린 팁들은 발표뿐 아니라 이메일이나 회의 같은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화려한 언변과 제스처가 사람을 돋보이게 할 수 있지만, 소통에 방해가 되면 방해가 되었지, 도움이 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저 같은 내향인들도 회사에서 훌륭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고, 충분히 그걸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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