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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owhat Dec 23. 2021

나의 강아지를 보내는 일기 12

2020.5.14


코코의 수술을 결정하는 건 태어나서 겪은 가장 큰 딜레마였다. 나처럼 결정장애인 사람이 이런 상황에 놓이자 더더욱 어려웠다. 종국에 결정은 내가 아니라 시간이 내려줬다. 코코가 더는 버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그 시점에야 "바로 수술해주세요"라고 울며불며 결정 내렸으니. 마음 속 세워뒀던 원칙이니 합리니 아이를 위하는 길이니 뭐니 다 뒤로 하고, 수술 전 CT 검사부터 강행했다.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병세가 악화되어 고통이 점점 커질 때까지 시간만 지체했던 셈이다.


CT 검사 마취라는 1차 관문은 하늘이 도와 무사히 넘겼다. 신부전 투병 중인 노령견에게 마취란 수술 만큼이나 리스크였으니까. 검사 결과, 코코의 목 안에 자리잡은 종양 때문에 지금 아이가 너무 괴로울 거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 순간 그때까지 재고 따지던 앞으로의 단계별 치료 계획 등등, 온갖 것들은 머릿속에서 전부 썰물처럼 쓸려 나갔다. 당장 저 혹 떼달라고, 하루라도 빨리 해달라고 빌었다. 그렇게 일요일 CT 검사 후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간, 마취 후유증으로부터 버텨주라 맘 졸이며 집에서 돌봤다. 한 입이라도 주사기로 밥을 먹이고, 숨 들이쉬고 내쉴 때 맞춰서 산소줄을 대주며, 그렇게 수요일을 맞아 수술장에 들여 보냈다. 


수술 직전 면회에선 엉엉 울고 말았다. 수술하는 날 전까지, 수술하다가 테이블 데스가 일어나면 지금 여기서 코코를 보는 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지려고 애썼다. 더이상 '조금 더'라는 건 없을 수도 있으니, 준비를 하자고. 하지만 밤새 곤히 자는 아이 얼굴을 보며 그 사실을 계속 되뇌어도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평화롭게 자는 그 모습이 내게는 너무 당연했으니까. 없어짐의 무게를 자각하려고 해도 잘 실감나지 않았다. 수술날 오전까지도 덤덤하게 입원을 시키고 점심까지 먹었다. 하지만 코코가 수술장으로 들어가게 되자, 무슨 말을 귓가에 속삭이고 어떤 약속을 해 줘야 할지 도무지 생각 나지 않았다.  


수술이 시작되고선 왠지 모르게 놀랍도록 마음이 차분해졌다. 20분 경과 후 선생님이 도려낸 혹을 들고 대기실로 내려왔다. 마치 이길 가능성이 높은 경주에서 반환점을 돈 기분이었다. 봉합이 끝났다니 거의 다 왔구나, 승리를 예감했다. 그런데 마취가 2시간째 안 풀려서 결국 마취에서 넘어지는구나.. 하던 찰나, 코코가 깨어났다.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는 지나온 시간보다도 앞으로 남은 힘든 여정을 못내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이 다음은 모르겠다. 남아있는 혹의 뿌리가 얼마나 빨리 다시 자라날지도 모르고, 전쟁 같은 신부전과 발작 간병의 시간을 얼마나 더 보내야할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일단, 일단 집에 가자 우리, 라는 말을 살아 있는 아이 귀에 대고 마음껏 속삭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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