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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owhat Jun 20. 2022

외로움도 참 가지가지다.

일찍 귀가하는 버스 안, 젊은 여자들은 확실히 주말임을 티내듯 딱 달라붙는 옷에 높은 힐을 신고 삼삼오오 어딘가로 향했다. 이들에게는 불금, 불토겠지만 서울에서나 해외에서나 나는 그다지 불 태울게 없는 사람이다. 와인 한 잔에 벌게진 얼굴을 감추려고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갔지만 집주인 L은 집에 없었다. 귀가한 흔적이 있는 걸로 봐서는 그 역시 불토를 보내러 홀연히 다시 나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 전날 밤, 나는 집주인 L이 주말을 맞아 피렌체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무척 불편하면서도 한편 기다려졌던 것 같다. 사람이 고팠던 걸까 인연이 고팠던 걸까. 아니면 관심이 고팠던 걸까. 외국에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아무래도 낯선 곳에서는 최소한 어떤 종류의 감정들이 평소보다 더 명확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내게 인연으로 들러붙어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새 것으로 바꿔야 할 시점이 왔다는 걸 분명히 인정하게 되는 것. 서울에서는 두려움과 게으름과 관성으로 인해 옆으로 치워뒀던 일이었다.


하필 피렌체에 가져간 책은 <상실의 시대>였다. 인연을 되새기고 반추하는 일은 하릴없이 부지런하지 않고서야 내키지 않는 일일뿐 아니라 마음이 아픈 일이다. 여러 인연들이 내게 오고 또 나를 떠난 이유는 잘린 무의 단면처럼 명확하지도 않다.


이날 독서는 단돈 1유로짜리 커피를 시켜놓으면 한동안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에서 했다. 좀 걷다가 해진 뒤에는 비블리오테카 3층 옥상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이곳에서도 단돈 8유로로 간단한 요깃거리에 와인까지 곁들이며, 걱정 없이 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피렌체 사람들도 테이블이건 아무 바닥이건, 한 구석 차지하고 앉아 군데군데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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