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의 결론은 명확하게!!
9월 정도 되면 다음 해 사업계획을 시작한다. 사업계획의 핵심은 예산을 편성하는 것인데, 이 말을 쉽게 표현하면 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 즉 쓸 수 있는 돈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정하는 문제는 이해관계자들의 니즈를 파악해야 해결할 수 있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민자고속도로 운영회사이다. 기획팀 입장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이해관계자들은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주주 및 이사회 그리고 주무관청(국토부)이다. 우리 회사의 주주는 법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등기이사로는 그 법인의 직원이 선임된다. 결과적으로 주주와 이사회의 니즈는 동일한데 그것은 재무적 투자자로서 수익률을 극대화하거나 지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국토부. 우리 회사는 사회기반시설(SOC)인 고속도로를 운영하는 회사로 주무관청의 관리감독을 받게 되어있는데 그 주무관청이 국토부다. 굉장히 무섭지만 우리를 사랑하는? 시어머니라 할 수 있겠다. 항상 평가와 감시를 일삼고 말을 듣지 않을 때면 명령도 내린다.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 시어머니의 니즈는 고속도로의 원활한 유지관리이다. 문제는 원활한 유지관리의 범위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넓어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안전에 관한 정책은 줄어드는 법이 없이 날로 날로 강화되기 때문이다. 강화되는 만큼 투입되는 비용 역시 증가한다. 당연히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지만, 비용이 당초 주무관청과 협의된 운영비용을 초과하여 그 규모가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이른다면 문제는 만만치 않아진다. 우리 회사 이사들은 재무적 투자자로서 본인들 회사 수익률을 저하시키는 의사결정 즉,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의사결정을 할 수가 없다. 특히 재무적 투자자가 공적연금을 관리하는 곳이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당연히 회사 규정상으로도 그러한 의사결정은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을 것이나, 만약 수익률 저하를 일으키는 선택을 한다면 그 결과 군인, 공무원 더 나아가 국민 전체에 손해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충되는 이해관계 속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현업부서에서 올리는 예산에는 다 그에 맞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 모든 사업들은 원활한 유지관리를 위해서 필요한 사업들이다. 그런데 돈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회의를 통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물량을 줄이거나 사업을 다음 해로 연기시킨다. 규정상 내년까지 꼭 완료해야 되는 사업들만 남겨본다. 그래도 예산이 초과한다. 이미 최소한으로 만들어 놓은 사업들이라 추가적으로 뺄 수도 없다.(종합 검토)
이러한 상황에서 마땅한 해결책 없이 앞서 말한 문제점들만 나열해 보고서를 작성했다가는 욕먹기 딱 좋다. 사장님이 그 보고서를 보신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어떡하란 말이지?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사회와 국토부 모두를 만족시켜야만 했다. 그것을 기준으로 삼고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기준을 세우는 것)
고민 고민 끝에 도출한 결론은 몇몇 사업들의 완료를 다음 해 12월 31일로 하고 준공검사를 시행한 뒤 2년 후 예산으로 집행하는 것이었다. 조삼모사다. 쉽게 말해 사업은 내년에 완료하고 돈은 내후년에 지급한다는 것이다.(최적의 안)
이 예산안으로 상무님, 사장님 결재를 거쳐 이사회까지 통과시키고 국토부에 당당히 유지관리계획서를 제출했다.
주식회사의 목적은 회사에서 생산하는 서비스와 재화를 팔아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윤 극대화라는 일관된 방향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상황마다 의사결정을 위한 기준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비용을 줄일 것인가, 수율을 높일 것인가, 마케팅을 더 공격적으로 할 것인가, 하나를 포기할 것인가, 다 아우르고 갈 것인가. 기획팀은 각 부서 의견을 종합 검토하여 의사결정을 위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는 최적의 안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보고를 받은 의사결정권자가 '그래서 어떡하란 말이지?'라고 되묻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