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쁠 희 Feb 02. 2023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의 폭력적인 언어 방식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트라우마를 끊고 싶다

며칠 전 사촌동생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새해가 밝고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기에 그동안에 캐치업 할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특히나 그간 한국에 잠시 다녀왔던 사촌 동생의 이야기가 가장 기대됐다.

외국인 남자친구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동생은 할머니에게 남자친구를 보여줬고,

둘이 찍은 사진을 보여줬는데 너무 귀여워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너무 궁금했다.

사촌들과 먹었던 팬케이크



근데 동생은 약간 상처를 받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마음이 불편했다고. 


그녀는 남자친구는 빅 3라 불리는 컨설팅 기업들 중 하나를 다니고 있는데

무척이나 똑똑하고 유능하다. 하지만, 조금은 로봇 같은 면이 있다.

특히나 감정적으로. 


그래서 이 로봇 같은 남자에게 유의미한 input(인풋)을 집어넣어 주는 것이

내 사촌동생이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면 똑 부러지고, 세고, 자기주장도 강해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 여린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나는 알기 때문에,


얼마나 지혜로운지

얼마나 착한지

얼마나 상처가 많은지를 난 느끼고 있어서

사실 그 누구에게 보다 마음이 가장 쓰이는 아이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자기 일은 똑순이처럼 해내는지

나름의 야망도 있고, 비전도 있고 그에 맞게 살고자

언제나 노력을 끊임없이 하기에

그녀에게 언제나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



근데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는

사촌동생한테 여자가 나이 들면 남자가 안 좋아한다,

이런 남자를 어떻게 만나겠냐(?)와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 그 남자친구가 다니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만 하셨다고 한다.

그래... 물론 우리 할머니는 그녀의 박학다식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거다.

실제로 동생 말에 의하면 원래 영어를 잘 하시는 걸 알았지만,

너무 잘해서 약간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대화가 계속 그의 사회적 지위라든지,

할머니의 친구의 아들이 얼마나 돈 잘 버는 의사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부끄러웠다고한다.


할머니는 당신이 겪어야만 했던 잔인했던

유년 시절 트라우마들로 여러 가지 내부 회로가 고장이 난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표현은 비판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거기에 살아오면서 당했던 무시, 멸시들로 인해

생겨버린 자격지심은 사람들을 자주 판단했는데,

그 잣대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식들을 지나,

손녀, 손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분명 할머니는 사촌동생과 대화했던 모든 날

당신도 기억하지 못한 다양한... 비판적인 말을 하셨을텐데,

동생은 말을 아꼈다. 

그저 한국을 다시 방문하고 싶지만,

매일 비판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유쾌하지 않았기에

걱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다음에는 다른 곳에서 지내,

할머니댁은 방문만 하자'라고 말했는데

이 착한 아이는 할머니가 너무 외로워 보이는 게 가슴 아프다고 했다.

매일 밖에 나간 자신을 기다리는 할머니가 신경 쓰여 힘들었지만

그런 할머니를 생각하면 걱정이 된다고 했다.



우리 할머니가 조금만 알았으면 좋겠다.

자식들도 손녀들도 다들 각자가 행복한 자리에서

저마다가 행복한 모습과 가치를 가지고

이런저런 트라우마들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품고 자라났는지.

그게 얼마나 축복받을 일이며 

고맙고, 미안한 일이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상처받아도 할머니의 딸들은

어떻게든 엄마와의 관계를 극복하고, 회복하고 싶어 하며,

손자, 손녀들도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예쁨 받고 싶어 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할머니의 딸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 세대적 트라우마를 옮겨받고 나서도

그녀의 자식들이 본인들보다 더 큰 사랑과

포용을 품고 자라났는지...


이쯤 되면 조금 못된 마음이 들만도 한데

우리 가족들은 너무 착하고, 사랑이 많고,


또 사랑이 고프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가장 할머니와 가장 크게 어긋나 있는 엄마는

할머니를 많이 닮았고, 또 나는 그런 엄마를 많이 닮았다. (생김새부터)


할머니는 엄마에게 상처를 많이 줬고, 

나는 엄마에게서 상처를 받았다.


그 와중에 나는 엄마에게서 받은 상처를 할머니에게서 치유받았다.

엄마에게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나의 포용과 공감이 높은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조건 없는 사랑 덕분이었다.




어쩌면 내가 할머니와 엄마의 결핍들을 모조리 안고 태어난 건

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고 있는 이 심리적 트라우마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는 소명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희를 위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