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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쁠 희 Apr 26. 2023

동생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부끄러운 과거, 내가 잊고 싶은 과거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동생의 친구들을 소개받는 날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릴 때 이야기가 나왔다. 동생의 친구들은 내가 동생을 얼마나 아끼고 예뻐 죽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왜 언니 싫어해~ 맨날 짝사랑이네' 라며 놀리기 시작했다. 근데 동생이 어릴 때는 그러지 않았다면서 '나도 다 이유가 있다고'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동생에게 화를 내서 동생이 울고 있었는데, 엄마가 들어오니 내가 '00 이가 넘어져서 울고 있어요'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시 동생에게 화를 냈던 이야기를 꺼냈다. 얘가 이 말을 꺼낸 것은 처음이었기에 내가 놀라기도 했겠지만, 사실 지금 꺼낸 이 이야기가 동생에게 가장 가벼운 기억일 것임을 알고 있어서, 나는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



나는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동생에게 화풀이했고,
엄마가 나한테 했던 행동을, 동생에게 똑같이 했다.



중학생 때는 유학을 가게 되면서 가족들과 거리가 생겼는데

나는 조금 더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로부터는 동생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되었으며

나의 잘못들을 만회하겠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잘해주겠노라 다짐했다.

동시에 난 동생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었다.

어떻게든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기에


동생이 나에게 차가움을 보이거나, 나를 속상하게 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것은 나의 업보를 치르는 과정이라 여겼기에 '기꺼이' 감수했다.

괜찮아. 내가 충분히 아플게 - 라면서.



근데 그 몇십 년의 세월을 업보를 치르면서, 노력을 했는데

동생은 아직도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그녀의 고통이 느껴져서 진짜 절망스러웠다.

'아 나는 용서받지 못했구나'라는 감정도 컸던 것 같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많은 것을 깨닫고 이제 내게 잘해주려는 엄마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복잡 미묘한 감정.

그런 엄마의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괜히 울컥하며 올라오는 미운 마음이

동생이 내게 느끼는 감정이 수도 있겠다고..



우리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는 엄마를, 동생은 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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