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늘의 대화에서 생각나는 것들
어제 만나면 기분이 좋은 동료들을 만나
즐거운 수다의 시간을 가졌다.
열심히 사는 프리랜서들이다 보니
누군가가 대화를 하는 순간 잠시 휴대폰을 봐야 할 때도
과한 미안함이나 지속적인 양해를 구할 필요 없이
시간이 흘렀는데 그 잠깐의 찰나마저 이해를 해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그래서일까 어쩌다 보니
반복적으로 서로를 칭했던 단어, '무해'였다.
무해(無害)
: 해로움이 없다
해할 해(害)를 찾아보면 한자 사전에 이런 그림이 나온다.
지붕 아래 입이 있고 그 입에 풀뿌리가 자라는 모습.
한자는 풀뿌리지만 흉기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害자는 집안에 말다툼이 일어나고 있는,
입에서 안 좋은 씨앗이 자라나는
'상해를 입히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한자에서도 나오듯 '말'은 누군가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대화는 불편하고, 아프고, 복잡하다.
모든 인간이 단순하게 대화를 하면 좋으련만.
누군가는 어떤 질문에도 의도를 담고, 해석을 담기 때문에
그 미묘한 선을 지키지 못하고
순진하게 말을 뱉었다가는 함정에 빠진다.
그래서 어떨 때는 조금 더 과묵해지길 택하기도 하는데
어제 내가 '무해'했다 느꼈던 이유를 잘 생각해 보니
그 누구도 하는 말에 누군가를 해하거나,
안 좋은 감정을 일부러 심거나,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안 좋은 말씨를 서로에게 심지도,
스스로에게 심으려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안전했고 따뜻했고 고마움만 가득했다.
뭔가 조금의 부정이 있으려고 해도
들어온 순간 정화가 되어 다르게 빠져나가는 느낌이랄까.
자괴감이 잔뜩 묻어 '저는 그게 안 돼요'라고 말하면
'상희님한테 안 맞는 거예요. 다른 게 있을 거예요'
라고 말하며 같이 골똘히 고민해 준다.
단순히 서로를 '어화둥둥' 하기 때문에 무해하다 이름 붙인 것이 아니다.
정말 서로가 잘하는 거, 진짜 서로의 좋은 점,
내 눈에만 보이는 빛나는 당신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으로 정말 투명하게
거리낌 없이, 불안해하지 않으며 대화를 나눴고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가볍고 행복할 수 없었다.
무해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느꼈던 하루.
아니 근데 해로움이라는 게 저시대에도
입으로부터 자라났다니 '인간'이란 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