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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없어요

글 감 : 바 닥

by 운오


“저, 내일 오후도 용달 부를 수 있나요?”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에코백, 종이 가방. 눈에 보이는 것마다 자잘한 짐을 담다 침대에 앉아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가능합니다.”


5시로 예약했다. 내가 싼 짐들을 둘러보니 도무지 차로 오며 가며, 지고 나르기에는 벅차 보였다. 아니, 더 노력을 기울이고 싶지 않았다. 통화를 마치고 머리로 다시 짐을 정리한다. 남길 것과 버릴 것. 버릴 것, 버릴 것. 차마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것.


배차가 됐다는 문자에 이어, 내 짐들을 함께 날라 줄 기사분께 전화가 왔다. 대충 짐의 양을 설명했고, 주소를 문자로 보냈다. 그리고 머리로 싸던 짐을 손으로 싸고, 또 쌌다.


11월 14일 토요일. 4시 47분. 어제 나와 통화를 했던 기사분이 전화를 주셨다.


“제가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지금 올라가도 될까요?”


설명과 예상보다 많은 짐에 조금 당황한 듯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5시 30분이 되기도 전에 내가 챙겼던 짐들 모두 트럭에 실렸다. 시작하고, 끝까지 어떤 불평의 말도 없이 빠르고, 열심히 내가 싼 짐들을 차로 옮겨주셨다.


“트럭 뒤에 타면 안 돼요?”

“네? 안돼요. 경찰이 쫓아와요.”


내 질문에 웃으면서 답한 기사님 옆자리에 앉아 나는 새로운 동네로 향했다. 1시간이 넘게 걸릴 거라고 내비게이션이 답했다. 시작은 식물 이야기였다. 기사님 여자 친구가 기르는 방울토마토 이야기. 트럭에 실린 내 화분 이야기를 하다가 기사님이 기르는 앵무새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새들도 애완조와 번식조가 있어요, 아세요?”


애완견처럼 사람 곁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새가 따로 있다고. 앵무새는 장에서 내놓아도 창밖으로 날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의 어깨에, 손 위에 앉아 함께 산다고. 새끼 오리가 알에서 나왔을 때, 처음 만난 존재를 자신의 어미로 인식하는 것처럼.


익숙해진 것은 내게 당연한 것이라 여기게 된다. 쉽게.


왼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내비게이션을 확인하고, 오른손으로는 계속 기어를 바꾸며 도로를 달리는 기사분께 물었다.


“이렇게 매일 일 하시면 힘들지 않아요.?”


문득, 얼마나 힘들까. 네비도 보고, 기어도 바꾸며 다음 일정까지 생각해야 하는데 처음 만나 이사를 도와 달라는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계속 말을 걸고 있다. 더군다나 어제 통화로 이야기했던 것과 달리 예상외로 짐도 많았다. 그런데 그는 일하는 동안 싫은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웃었다. 그리고 최근에 일을 하면서, 또 지내면서 이렇게 오래 말해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힘들지 않다고 했다. 어떤 날은 양문형 냉장고를 지고 나르기도 하고,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힘든 날들도 있지만 집에 들어가 자고 다음날 일어나면 또 괜찮아진다고 했다.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지치고 힘든 날에도 집에 들어가 자고 일어나면 또 일을 하러 나가게 된다. 돌아보니 내가 지나온 시간 속에서 나도 그와 닮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속으로 욕지기를 하면서 더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도 다음 날에는 출근을 했다. 덧붙이는 말로 그는 제대를 하고, 1년은 열심히 벌고 번 돈을 다 쓰면서 놀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계속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나르는 일을 하기 시작한 지도 이제 2년이 조금 넘는다고. 그런데 그렇게 살았던 시간, 일만 하면서 지나온 시간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후회는 없다.


매일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하고. 나를 먹이고 재우고 책임지며 사는 생활.


나는 다시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한다. 결국 전에 하던 일과 비슷한 아니, 같은 일을 다시 시작했다. 걷고, 말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내 하루를 채운다. 그리고 긴, 아주 긴 시간과 작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웃고, 먹고, 떠들고, 글도 쓴다.


오롯이 나를 책임지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선택은 모두 내가 짊어질 책임이 따른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되었고, 그런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5월에는 성산에 살았는데, 11월에는 신림에 산다. 이제 누군가 내게 어디 사냐 물으면 나는 ‘신림 살아요’라고 답할 것이다. 출근길도 퇴근길도 멀어지고, 더 힘들지만 후회는 없다.


트럭에서 짐을 다 내리고 기사님과 마주 본 채로 용달 비용을 이체했다. 처음 예약했을 때보다 조금 더 많은 금액을. 후회는 없다. 익숙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매일을 책임지며 지나온 시간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았으니까.


꾸준히 매일을 일하며 보냈던 힘이 지금 나를 버티게 해주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그 덕에 이번에는 글을 썼으니, 괜찮다.


내일은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이니 퇴고 없이 메일을 보낸다.

후회는 없어요. 모두 좋은 한 주 보내세요.


개인적으로 글감을 받아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매주 메일로 글감을 받고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씁니다. 그렇게 쓴 글을 싣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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