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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Nov 04. 2022

가시가 박혔다

손바닥에 가시가 박혔다. 바늘로 집게로 아무리 애써도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처 난 자리가 빨갛게 부었다. 통증이 계속 있다.


가시가 처음 박혔던 순간에는 통증이 있었다. 그리고 일이 바빠 정신없이 움직이는 동안 까맣게 잊었다. 통증도 가셨다. 다시 기억이 나서 가시를 빼려고 갖은 방법으로 상처를 건드리니 통증이 느껴졌다. 신경은 계속 상처와 가시로 향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핸드폰을 쥐고 검색을 한다. 가시를 뺄 방법을 찾는다.


부추를 이용하기도 하고 도구를 이용하기도 한단다. 그중에 가장 적절한 방법은 잘 씻고 잘 기다리는 일 같았다. 상처 부위, 그러니까 가시가 박힌 손을 자주 깨끗하게 씻어주고, 재생력이 좋은 피부가 이물질로 들어와 있는 가시를 자연스레 밀어낼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즉, 몸이 가진 재생능력이 가시를 스스로 빼낼 수 있도록 시간을 가지면 된다는 것. 가장 쉬운 일 같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 같다.


기다리는 일. 내게 생긴 상처와 통증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일. 스스로의 회복력을 믿는 일. 끊임없는 의심과 싸우는 일. 과연 스스로 상처를 아물게 할 힘이 내게 있을까. 이 통증이 가실까. 상처가 아물고, 가시는 빠져나갈까. 이 기다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솟아나는 의심과 싸우며 매일 상처에서 눈을 돌리려 했다. 그럼에도 손바닥에 가시가 박혔고, 그것을 빼내려 한 덕에 더욱 상처가 깊어진 것은 변함이 없다.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니 통증은 가셨다. 일상을 보내며 의식하지 않으면 손바닥에 박혔던 가시가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무심결에 바라보니 상처는 아물고 있었다. 새살이 돋고, 조금 다른 색을 하고 있다. 가시는 빠진 걸까. 작아서 잘 빠지지도 보이지도 않았지만 통증으로 그 존재를 분명히 했던 가시, 빠졌을까.


오늘도 손을 깨끗이 씻는다. 밥을 먹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한다. 친구와 연락을 하고, 좋은 자리를 찾아 시간을 보낸다. 책장을 넘기다 손바닥에 눈이 간다. 아직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다. 여전히 가시는 박혀있을지 모른다. 오늘도 의심과 싸우고 있다. 통증은 없다.


손바닥에 가시가 박혔다. 상처가 났고, 통증이 있었다. 지금은 통증은 가셨다. 새살이 돋고, 상처는 아물고 있다.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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