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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May 09. 2024

오늘은 괜찮다

상처는 참 아물지 않는다. 아주 어린 날의 기억은 어른이 되고 많은 나이가 되어도 도무지 아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상처에 스스로 무감각해지려 애쓰는 건 아닐까.


채널을 돌리다가 인터뷰 영상을 봤다. 요즘 흔해진 일반인들이 나오는 연애 프로그램 영상. 출연진의 인터뷰. 덤덤하게 지난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눈물을 보이는 모습. 무던히 노력했을 시간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나와 주변 사람을 지키기 위해, 누구에게든 괜찮아 보이기 위해 무수히 애쓰며 지나왔을 시간. 이제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을 텐데 잠깐 그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흘러내리는 눈물. 어쩌면 너무 오래 견디고 참아왔기에 아주 작고, 사소한 것으로도 쉽게 터지는 것일지 모른다. 늘 꾹꾹 누르기만 했으니까, 밖으로 꺼내다 보면 저 아래 깊이 가라앉았던 슬픔이 봇물처럼 올라올지도. 물론 그렇게 터져버린다고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나처럼 와르르 무너질리는 없다. 아주 견고하고 단단하게 잘 쌓아뒀으니까. 아주 잘 다져진 슬픔의 퇴적층은 그저 깊고 깊을 뿐, 결코 허물어질 리 없다. 결코 그럴 리 없다.


결코 그럴 리 없다.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 같을 말. 그래선 안된다. 늘 어금니를 악 물고, 힘을 가득 주어 주먹을 쥐고 걸음을 내디뎌야 했을 이들이 걸음마다 되뇌었을 말. 매일이 숨이 찼던 시기에는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들면 괜찮아질 것이란 위로에도 화가 치솟았다. 그들이 말하는 내일은 너무 멀고,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당장 오늘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치기 위해 힘주어 걷고, 웃고, 희망 없이 잠드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시절에는 자주 주저앉았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더 무엇을 할 여유도 갖지 못했다. 그저 나의 불행이 티 나지 않기를 바라며 전전긍긍하고, 슬픔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어떻게든 발을 디뎌야 했으니까. 걸음마다 다짐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지며 자라난 시간이 결국 지금의 나를 지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 잠깐 운다고 내가 그간 쌓아온 노력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늦게, 이제야 알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한 번은 더 울어보고, 화도 내며 스스로를 좀 다독였을 텐데.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더 늦지 않고 오늘 알았으니까. 잠깐 울고 탈탈 털고 일어나면 되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울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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