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잠들고 싶었다
겨울밤. 중앙 분리대에 부딪히고 나서 정신이 들었다. 다행히 오르막 길이라 차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고, 밤이라 주변에 차라곤 내가 운전 중인 차뿐이었다. 차량의 좌측 아래 부분이 중앙 분리대를 스쳤나 보다. 화들짝 깨었다.
다행이라고 말해야겠다. 사고는 없었다. 터널을 지나 안전하게 주차를 했고, 방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합할 만큼 작은 집에 들어와 몸을 뉘었다. 그 겨울에 내가 가장 안전하게 누울 곳은 그 자리뿐이었다. 옷은 갈아입었을까. 잠을 잤을까. 다음 아침에는 일어나 다시 밖으로 나갔을까. 많은 날이 기억에 없다. 열심히 살아 냈지만 무엇도 떠오르지 않는 날들뿐이다.
여전히 출근도, 퇴근도 하는 매일을 보내고 있었지만 나는 대부분의 시간에 잠들어 있었다. 깨어있는 모든 시간이 괴롭게 느껴졌다. 어떤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정신없이 출근을 했다. 운전을 하지만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이제 와서 아찔한 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지나고 나서야 운전 중에 잠들어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잠든 채였다. 차선은 몇 번을 넘었던 것 같고, 신호도 보지 못했다. 누군가는 경적을 울리지 않았을까, 걱정이 될 정도의 상태였다. 몽롱했고, 비틀거렸다. 모든 시간과 기억이 뒤틀린 기분.
꿈에서 깨어난 것은 언제쯤일까. 중앙분리대에 부딪히고도 얼마간은 잠든 채였다. 아니, 그대로 잠들고 싶다는 표현이 맞겠다. 사고처럼, 꿈처럼 잠들고 싶었다. 정신이 들면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었다. 같이 웃고 떠들고, 술을 마시며 달음박질쳤다. 꿈이길 바라는 매일로부터 빠르게 멀어지려 했다.
나의 시간은 그렇게 두 눈을 꼭 감고 방향도 모른 채 내달리고 있었다.
그럼, 지금의 나는 깨어 있는가. 깨어난 것일까. 어느 날들은 꿈이기를 여전히 바란다. 아픈 일들은 때론 아득하게 보인다. 좋은 일도 널찍이 거리를 두고 있다. 손에 닿지 않게 멀리 있다고 통증이 가신 것은 아니다. 흉터도 없는데 여전히 불쑥 올라와 숨통을 조이기도 한다. 그렇게 아플 때면 울면서 깨어난다. 아무리 달래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 아침도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이면 마냥 잠들고 싶은 채로 하루를 보냈다. 슬픔을 손에 가득 쥔 채로 토닥이느라 온통 아프기도 하고, 시작하지도 않은 하루를 마치기도 했다.
현실과 꿈이 분리되지 못한 채 깨어날 때가 많았다. 꿈에서 많이 우는 밤은 소리 내 울며 눈을 뜬다. 슬픔을 가득 쥔 채여서 어깨를 마음을 아무리 토닥여도 울음도 어깨의 들썩거림도 가라앉지 않았다. 위태로운 날들의 연속. 한동안은 계속 꿈을 꾸는 것처럼 살았다. 끝없이 반복되는 꿈. 시작도 끝도 분명하지 않은데 아픈 자리는 늘 같은. 아프고 겁먹은 채로 땀벅벅이 되어 눈을 뜨지만 차라리 꿈이면 싶은 아침. 꿈이라면 그 속에서만 무서워하고, 슬퍼하고 아파하면 될 테니까. 중앙분리대를 향해 핸들을 쥐고 있던 밤과 차선을 넘으며 운전하던 날들이 그랬다. 괴롭고, 아프지만 차마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길 바라는 시간. 내게 처한 모든 것이 허상이기를 바랐다. 물론 바람일 뿐이었다. 헛된 꿈. 마냥 잠들고 싶었다. 마냥 꿈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