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하는 고백
사랑을 말해도 될까. 그래도 될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좋아하는 시인은 사랑하는 일이 잠든 이의 위로 내리는 빛을 어루만지는 것이라 했다. 가만히 떠올려 본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 위로 들고 나는 빛을 바라본다. 잠에서 깰까, 얼굴을 쓰다듬지 않고 빛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리도 조심스럽고 애틋한 마음이 있을까. 작은 손짓에 혹여 깊고 조용한 단잠을 깨울까 얼굴 위로 앉은 빛을 어루만지는 마음. 얼굴과 손 사이를 채우는 빛 만으로도 충분히 따듯해지는 시간. 시인의 문장을 읽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았다. 그와 내가 참 닮은 사람이라 여겼다. 내가 하는 사랑은 그랬다. 사랑하는 이의 단잠을 깨우기 싫어 공중을 가르는 빛을 어루만지는 나였다.
문득, 이 조심스럽고 애틋한 사랑만으로는 많이 부족한가 의구심이 든다. 잠든 이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야 하는 걸까. 빛을 어루만지는 조용한 몸짓은 그저 작고, 티 나지 않는 마음에 지나지 않을까. 행동이 작다고 그 사랑이 작은 것은 아닌데. 그 누구보다 당신이 이 사랑을 소홀히 여길까, 이 애정이 당신에게 얕아 보일까 겁이 났다.
요란하지 않고 눈에 띄지는 않지만 오래 깊이 사랑하는 사이일 거라 여겼다. 아프고 괴로운 일은 찾아올 테지만 함께 이겨내고 서로의 등을 어루만지고,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물론 가능하다면 아프고 괴로운 일은 비껴가기를 바랐다. 간혹 사람들의 염려는 걱정이 아닌 마치 그들의 바람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정말 그랬을까. 늘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일은 벌어지게 되는 걸까. 그랬다. 일은 벌어진다. 아프고 괴로운 일은 결코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사방에서 휘몰아쳤다. 소용돌이치는 시간 속에서 상처를 짚으며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과연 어디로 되짚어가야 바로잡을 수 있을까. 해지고 떨어져 버린 조각들을 깁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 해를 어수선하고 어지럽게 보냈다. 굳건하리라 여겼던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생채기가 났다. 위태롭고 불안한 마음으로 오래 흔들렸다. 어쩌면 이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은 채 품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듣지 말아야 할 말과 보지 않아도 될 많은 일들을 목격하며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말이 길어졌다. 힘들고 아픈 일은 늘 이렇게 지워진 듯하다가도 불쑥불쑥 올라와 오래 이어진다.
나는 당신을 지독히 미워했고, 당신은 나를 지독히도 아프게 했다.
우리는 서로를 놓지 못하고 다시 부둥켜안았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한다. 몇 년의 시간을 상처가 아물도록 약을 문질러도 딱지가 앉지도 않고, 흉터가 되지도 않았다. 시간을 바르며 들여다보게 되는 상처는 내게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했고, 원망하며 현재에 온전히 머물지 못하게 한다. 행복한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어제와 오늘을 부정하게 된다. 우리의 시간과 마음을 부정하면서도 당신을 어루만지고 온 힘을 다해 끌어안고, 사랑한다는 말을 읊는다. 양가적인 마음이 마주 본다. 외면할 수 없는 마음이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랑을 말하고 싶은지.
소리를 높여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고, 사랑이라고. 그리고 나는 사랑을 하면서 이토록 아프다고. 나의 사랑은 애틋하고, 조용하지 않고 치열하고 지난하다고. 당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일이 내게는 이렇게나 어렵게 손에 쥐는 행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