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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May 28. 2022

너의 불행을 빈다.

아무 일도 없던 하루다. 어제처럼 일하고 집으로 돌아온 하루.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어제와 다른 거라고는 집에 도착하면 불빛 없이 온통 깜깜할 거라는 것. 그것 하나뿐인데 너무 슬펐다.


생활에 공백이 생기면 그 자리를 채우려 기억이 몰려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머리를 감을 때. 밖으로 나가려고 문고리를 잡았을 때. 버스에 오를 때. 여전히 문득 아니 자주 떠오르는 기억은 나를 아프게 찌른다. 독한 말을 품게 한다. 나를 모르는 이가 함부로 던졌던 말들에 화가 나고, 나쁜 마음이 솟는다. 멀어진 시간은 금세 옆에 자리를 차지한다. 앞으로 가려는 나의 목덜미를 손에 쥐고 자리에 주저앉힌다. 그런 날에는 별 수 있나, 주저앉아서 울다가 일어난다.


상처에 딱지가 앉고, 딱쟁이가 떨어진 자리에 흉터가 남을 줄 알았다. 내 몸에 남은 다른 흉터와 마찬가지로 점점 흐릿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몸과 마음은 달랐다. 마음에 난 상처는 아물지도 딱지가 앉지도 않는다. 흉터가 흐릿해지지도 않는다. 그냥 계속 남아 있어 익숙해졌다가 불현듯 틈이 벌어져 통증이 올라온다. 그런 날이면 달리 손 쓸 수 없어 기억과 아픔에 사로잡힌다.


버스에서 내리며 엉엉 울었다. 말처럼 엉엉. 소리 내 울지 않으면 속에 꽉꽉 차올라서 터질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와 집까지 울면서 왔다.


안다. 오늘 하루 누구도 나에게 모질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상처 주지 않았다. 안다. 그냥 나는 혼자 슬펐다. 지난 기억과 말이 떠올라서. 그 상처를 온전히 알고 보듬어 줄 사람이 나뿐이라서. 이렇게 나는 이따금 불행해진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모진 마음을 먹기로 한다. 나쁜 말을 하기로 한다.


당신이 함부로 뱉었던 말과 생각 없이 저질렀던 행동에 스스로 부끄럽기를 바란다. 너의 불행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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