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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니 Feb 04. 2020

타의로 글쓰기

회원님의 브런치 계정이 휴면 전환될 예정입니다.

지난해부터 부쩍 글을 쓰고 싶다고, 글을 쓸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내 말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소위 '공언효과(profess effect)'를 기대하고. 2018년 아이를 낳으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돌 지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잠시 알바를 하면서 다시 월급쟁이 생활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시간에 매여 육아와 병행하자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졌기 때문에 프리랜서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내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너무 건방진 것 같아서 어렸을 적에는 만화가게 주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커서는 편집자나 지역신문 기자 같은 월급을 위한, 직장에 의한 타의에 기대어 글쓰기를 했다. 글쓰기 훈련은 잘 되었지만 내가 따로 무언가를 쓸 에너지가 남지 않았다. 주간신문인 지역신문은 일한 지 2년도 채 안되었었는데 검색해보니 1000여개의 기사를 썼다. 군청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부처, 도청, 연구원, 지역 단체 자료 등등 너무나 많은 읽을 것들이 있었고 이것들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시 전달하느라 글을 쓸 에너지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글쓰고 싶다는 말들을 조금씩 뱉으며 다녔다. 말이 씨가 되고 싹이 나고 잎이 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그런데 말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이어지진 않았다. "김구가 글이 명문인 게 아니다. 훌륭한 사람이라 글이 좋은 거다"라는 글을 보며 '지금은 일단 쓸 때가 아니라 훌륭해질 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들을, 아니 생각도 못한 것들을 잘 써내는 작가들의 글을 보며 '이런 훌륭한 글들이 더 읽힐 수 있게 글의 종류가 줄어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일단 나부터 불필요한 글을 줄이고 좋아요를 누르고 열심히 반응하는 독자가 되자' 따위의 각오를 했던 적도 있었다. 실제로 글을 쓸 에너지가 없을 때에는 내가 좋은 소비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괜찮았다. 나는 기사, 행정의 영역, 정책사업 등으로 충분히 생산의 보람과 고충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아이를 낳게 되자 나의 엄청난 관계와 업무의 가지들이 잘려나갔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단순한 일의 반복 또 반복,  엄마? 찌찌? 타요! 의 세계 속에서 나의 생각과 경험을 대화할 시간과 대상이 현저히 줄어들게 되면서 다시 그것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로 쌓여갔다. 지나간 경험들을 되돌아볼 시간이 많아졌고 더 잊기 전에 남기고 싶어졌다. 당면하고 있는 육아와 살림이라는 엄청나게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도 좀더 생생하게 남기고 싶어졌다.


사실 글은 지금도 조금씩 쓰고 있다. 육아일기 앱으로 매일매일 일기를 쓴 지가 벌써 일년이 넘었다. 짤막하게 떠오르는 문장이나 글감 아이디어는 메모앱에 잔뜩 있다.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저장되어 있는 글도 무려 36개나 된다. 지난해 너무 내뱉다시피 써놓고는 다시 보지도 못하고 정리를 못해 발행도 못누른 글들인 거다. 뭐 언젠간 잘 정리해서 발행해야지 싶었는데.. 사용이 없어 휴면 계정으로 전환된다니!!


브런치는 저장만 해서는 이용으로 안 쳐주는 거였다. 그래, 작가를 꿈꾼다면 모름지기 다른 사람들에게 습작이라도 보여주고 반응도 알아보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건 일기 앱이 아니잖아? 그리고 나는 일기를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경험을 글로 쓰고 알리고 나누고 싶은 거였다. 글을 써야지~ 하고 어떻게 노트북이라도 켜면 으레 넷플릭스로 빠져들었는데, 휴면 전환 안내 메일을 받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한 시간 넘게 집중해서 글을 쓰고 발행을 누른다. 역시 글쓰기는 타의에 의해서 잘 쓰이는 것이야. 특히나 코앞에 닥치면! 일단 시작하면 또 굴러가게 돼 있다. 지난 주엔 일년치 필라테스를 끊었다. 이제 일년치 발행권을 끊은 느낌이다. 휴면은 면하자는 작은 목표를 갖고 차곡차곡 발행해 나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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