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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니 Feb 26. 2021

부르마를 아시나요

분홍의 시간, 너를 만나 달라진 세상


초딩 6학년이 되는 조카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심드렁하던 조카가 드래곤볼 이야기로 급 활활 타올랐다.


내가 10대 때 보았던 드래곤볼이 30년을 넘어 지금도 화제가 된다니 심지어 끝난 게 아니라 계속 스토리는 이어지고 있다.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는 악당 마인부우 편을 끝으로 만화책 드래곤볼 끝을 맺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손오공이 고리 달고 합체하고 다시 나타나는 걸 몇 편 보긴 했다. 머리가 빨갛게 됐다가 청록색이 됐다가 이제 다시 까매진다 카대예...


조카 말로는 손오공이랑 베지터도 이제 퓨전을 하고 계왕 귀걸이로 합체한 베지트라는 것도 있다는데 ㅋ


내가 얘네들 이름이 되게 웃기게 지은 거 아냐고 베지터는 채소(vegetable)에서 따온 거고 프리저는 냉장고(freezer)에서 따온 거라 하니안 그래도 프리저 아빠는 콜드라 카더라.


옛추억을 되살려 신나게 얘기하다가 조카가 문득 물어봤다.



이모는 드래곤볼에서 젤 좋아하는 캐릭터가 누구예요?



예전이면 손오공이나 트랭크스라고 하겠지만 (1997에 세상이 망한다고 했던 아놀드슈왈츠제네거 주연 터미네이터의 에드워드 폴롱이 트랭크스 머리를 했었지)


지금의 나는?

'부르마'라고 대답했다.


부르마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여자애들이 입는 숏팬츠 같은 속옷을 지칭하는 거라고 한다. 이름만큼이나 맨처음 등장했을 때는일본만화에 나오는 에로 코드? 같은 느낌으로

거북도사의 성추행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가슴을 까거나 흔들어대는 액션이 많았다.


아빠인 과학자가 만든 캡슐을 가지고 이런 저런 장비를 제공하거나 드래곤볼 추적기, 에너지 스카우트 같은 걸 갖고 다녔지만 그래도 부수적이고 항상 숨어 있고 약자라는 느낌이 들었던. 나올 때마다 별로 재미가 없어지는 그런 캐릭터였다.



그랬던 부르마가 내가 애를 낳고 보니 완전 달라 보였다!



부르마의 캐릭터는 베지터와 결혼하고 바뀐다. 야무치랑 썸 탔던 부르마가 어디선가 아기를 낳아 나타났는데 그것은 베지터 아들.. (어렸을 때 이 전개를 보고 뭥미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수긍이 되는.. 연애란 결혼이란..) 미래에선 터미네이터 버전으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아들과 외로이 분투하는 과학자가 됐다. 그리고 차츰 과학자로서의 면모가 나타나면서 이런저런 기술을 만들어 내는 데도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집에 돈도 ....


이와 대조적으로 손오공 아내 치치는 돈도 제대로 못 벌어오고 맨날 지구를 구하러 갔다 목숨이 달랑달랑한 남편이며 자식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걸로 나온다. 그래서 자식은 무술을 안 시키고 공부를 시키려고 하고 손오공에게 잔소리 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치치 입장에선 당연할 것 같기도 하다. 전업 돌봄노동자 ㅜㅜ 그 집안의 살림과 현실 걱정은 다 치치 담당...)


하지만 부르마는 손오공과 같은 무일푼(?)에 성격까지 더 안 좋은 베지터 같은 남편을 선택하고도 자기가 잘 벌고 (친정 빨도 사실 있다) 까탈스런 신에게 디저트나 맛나니로 유혹해 베지터의 레벨업을 도모한다거나 트랭크스에게 다양한 장비를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며 세계를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조카는 싸움 만화라고 나한테 말했지만 지금의 나에게 보였던 건 그런 가족의 모습들이었다. 원하는 삶을 살고 사실 탑이지만 세속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집안과 원하는 삶을 살면서도 (하지만 언제나 2인자) 세속적으로도 성공을 누리는 집안이 대대손손 같이 지내는 것. (막장 일일드라마 스토리다) 아니면 가치관이 같은 부부와 그렇지 않은 부부


젊었을 적 부르마도 나이든 부르마도 결국 남자들의 로망일지 모르겠지만 암튼 나이든 부르마는 확실히 엄마가 된 내가 보기에 멋져 보였다. 치치보다는 부르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


모처럼 조카랑 공통주제를 찾고 그럼에도 내 얘길 해서 좋았다는. 전화를 끝으면서 조카한테 얘기했다.




그 만화 너 어른 될 때까지도 안 끝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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