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의 흐름

어릴 적 설날을 보내며 쓰는 글

by 지유



설날을 생각하면 내가 아이였던, 집안에 아이들이 많았던 2000년대가 지금도 먼저 떠오른다. 설에 아이들은 늘 연극을 꾸며서 공연했다. 그러고는 뒷산에서 밤을 까먹거나 집 앞 논의 벼를 따먹었다.



인생 첫 자발적인 창작을 함께했던 내 친척들을 10여 년만인 재작년에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열 명 가랑의 아이들은 서로에게 참 애틋하고 다정했다. 내가 귀여워했던 친척 동생들이 성장기를 넘겨 등장했을 때는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최대한 어색하지 않은 척 처음 만난 대학생들을 예전 그 모습을 떠올리며 챙겨줬다. 작은엄마는 조금 더 쌓인 눈가 주름과 조금 더 커진 입으로 활짝 웃으면서 나와 동생들을 반겼다. 기억하는 게 많았던 그는 출근한 엄마의 안부를 이것저것 물었고, 당신들은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농담조로 말해서 헷갈렸지만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그 말 그대로 전하고 나서, 작은 엄마 보러 한번 갈까? 덧붙이니, 엄마는 반갑지만 씁쓸한 눈빛을 하고 굳이? 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둘은 며느리로서 온갖 명절 노동을 긴 시간 동안 겪어낸 동지였다.


다른 집들처럼 우리도 제사를 폐지하고 명절을 간소화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우리는 더 이상 전주나 삼계로 내려가지 않는다. 설은 우리 마을로 올라오신 할머니네 주택에서 지내게 되었고, 몇 년 후에는 근처 아파트로 옮겨갔다. 명절의 전형적 걱정거리인 심각한 교통 체증이나 제사 노동도 우리 가족에겐 먼 얘기가 되었다. 자연스레 엄마와 내가 좋아했던 전통인 휴게소 버터구이 오징어 사 먹기도 중단되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명절을 만들었던 친척들이 다 크고 몸으로 놀던 시기가 지나니 이제 가만히 앉아 말로 나를 설명해야 했다. 처음 설날에 잡기놀이를 안 하게 되었을 때, 더는 내 몸에 새겨진 그 예전의 설날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우리 가족의 설날은 가족 중 누군가에게 생긴 축하할만한 일을 할머니가 모두 모인 가족들에게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고선 자리를 바꿔가며 떡국을 한바탕 먹고, 줄 사람은 주머니를 채우고 받을 사람은 주머니를 비워 세배 의식을 거행한다. 두둑이 받은 모습을 보며 준 사람도 행복해한다.



받은 몇몇은 슬슬 배달팀을 꾸려 주문을 받고 찬바람을 쐬며 양손 무겁게 집 옆 할인점 커피를 사 온다. 근황 토크가 마무리될 때쯤에는 뮤지컬 아역배우인 사촌 동생이 튼튼한 성대로 시원하게 노래를 한바탕 불러 젖힌다. 우리는 박수를 친다. 외숙모는 흐뭇하게, 사촌 동생은 쑥스럽게 앞니를 드러내며 미소를 보인다. 그러고 나면 모두는 집에 가기 전까지 먹거나 마신다.


형식이 어떻든 설날의 모습이 변한 것을 어색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시골에서 사촌들과 초등학교 놀이터로 뛰어가거나 가래떡을 나눠 먹던 모습을 종종 그린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이 각자에게 맞는 새로운 명절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는 점이 좋다. 꿋꿋이 해내거나 꾹 참는 어른들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 또 다음 버전의 설날이 나타나면 우리 가족이 나눠 마시던 저렴한 커피를 그리워할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