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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Sep 14. 2021

데스페라도 바

이야기꾼

2020/10/31


데스페라도 사장님은 항상 해줄 말이 많으신 분.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올드팝이 듣고 싶어서 찾아갔더니, 앨범 제작 배경과 의미부터, 노래에 쓰인 악기들의 역사와 같은 장르의 후배 뮤지션 소개까지 쉬지 않고 들려주셨다. 알려주고 싶은 게 넘쳐 입술을 달싹거리시다가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싶어 애써 삼키는 순간들이 보였다. 지식이 너무 많아서 그 중 할 말을 선별해서 골라내야 한다는 건 무슨 느낌일까. 그 머릿속은 분명 여러 개 방이 딸린 건물처럼 잘 정돈되어 있겠지. 셜록 홈즈나 라성일 선생님이 언급하신 mind palace, 즉 마음의 궁전 같은 건가. 그분들의 뇌구조를 상상만이라도 해보고 싶다. 그 모든 이야기와 디테일들을 헷갈리지 않고 조금도 더듬지 않고 리스너가 듣기 좋게 말한다는 건 무슨 경지일까. 숙련된 이야기꾼의 경지란? 학원 수업하며 같은 내용을 수없이 반복한 덕분에  발끝까지는 가본  같은데, 수사적인 부분까지 신경쓰는 여유라곤 전혀 없었다.


어젠 어디선가 들었던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을 신청했고 프로그레시브라는 장르의 음악사를 한시간 요약으로 듣고 왔다. 해당 가수의 앨범 LP를 자연스레 꺼내어 들려주시는건 덤. 계속되었으면 싶은 이야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처음 이곳에서 충격받았던 그날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예상치 못한, 들여다보려고 생각조차 않은, 그렇지만 매우 흥미로운 분야. 내가 관심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던 것, 거기선 그런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장님은 벽에 꽂힌 수많은 엘피들을 하나씩 꺼내어서 그 역사 속 묵은 지식들을 매일매일 쉼없이 아낌없이 마구마구 줄줄 널리널리 풀어내어야 마땅한 분인데, 많이들 이 곳을 찾지 않는다는 말이 깊이 꽂혔다. 아, 이건 분명 주인이 있는 지식들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지식들이다. 예전 어느 명절날에 학교에서 배운 한국전쟁사가 어렵다고 징징대자, 옛날이야기처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시던 친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세지 못할 정도로 자주 떠올리고 되새겼을 이야기들, 그리고 그걸 능숙한 곡예사처럼 듣기 좋게 만들어 꺼내는 경지에 오르신 분들. 라선생님이 말씀하신 스토리텔링의 'acrobat' 에 준하는.


오랜 세월 열정으로 쌓아온, 어디서도 보기 힘들고 절대 쉽게 얻을 수 없는 고귀한 지식 보물창고를 가진 분들이 하고 싶은 말 싹싹 긁어 누구든 이롭게 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으면! 보이지 않지만 의미있는 가능성들이 소실되지 않게, 나도 노력해야지. 그리고 돈 많이 버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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