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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Jul 22. 2021

어린 삼계의 기억

설과 추석


문득 삼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네이버 지도에 삼계초등학교를 검색했다. 어릴 때 명절날 모이면 사촌언니랑 동생들이랑 수다 떨며 걸어가서 실컷 놀다 왔던 곳. 아직도 그대로일지 궁금했다.





이름이 맞나 긴가민가했지만 익숙한 구조를 보고 그곳을 확신했다. 운동장의 철봉과 빙글이, 학교 뒤 병설유치원의 그네. 순식간에 머릿속에 학교 구조와 풍경이 그려졌다. 교문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면 집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기억을 불신해온 과거를 잊고 이번만큼은 무의식 속 유년기 기억을 믿어 보기로 했다. 거리뷰에 들어가서 더블 클릭으로 골목골목을 빠르게 돌아다녔다. 그중 어떤 길은 걸을 때 즐거웠던 기억이 났다. 감각의 기억이었다. 잠시 멈추고 옛 기억을 차근히 되짚으니 길모퉁이에 있었던 구멍가게와 가을이면 노랗게 변하는 넓은 논이 떠올랐다. 어린 나는 거기를 지날 때면 길 쪽으로 고개를 숙인 벼를 따서 그 속의 쌀을 꺼내 오도독 씹으며 팔자 좋게 걸었었다. 모니터 속 길을 따라 계속 가다가 큰길 중간에 큰 농협이 보였을 때 잠깐 헷갈렸다. 분명 이런 대형 마트는 없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장 보러 가기 편하셨겠군. 게임에서 누군가가 순식간에 건물을 지어놓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본 적 없는 마트의 사진만으로도 그 동네가 조금 낯설어졌다.



초등학교에서 걸어 나오면 보이는 큰길에서 샛길 중 하나로 들어가면 할머니 집이 있었는데, 대문 앞에 차를 주차했던 기억으로 좁은 길들은 후보에서 지웠다. 그러다가 가장 아닐 것 같은 길에 들어갔는데, 은색 대문을 보자마자 그 집임을 확신했다. 마루가 훤히 보이는 유리창도 그대로였다. 네이버 거리뷰 담당자가 지나가면서 찍은 한두 컷의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그곳을 보는데 어쩌면 다시는 갈 수 없을 곳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없지만 제목과 엔딩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동화책을 검색해 본 것 같았다. 내가 이 모든 변화를 겪는 동안 늘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집이란. 그리고 거기에 늘 살고 있는 사람들이란. 변화무쌍한 내 하루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던 그곳.




추운 계절이 되면 삼계에 도착한 아이들은 밤나무 숲으로 가서 밤을 주웠다. 이미 바닥에 밤이 많이 떨어져서 굳이 나무를 흔들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준비해 간 두꺼운 신발을 신고 왼발로 밤가시를 고정하고 오른발로 껍질을 깠다. 그러면 갈색의 탱글탱글한 밤이 보였다. 나는 헐거운 목장갑을 낀 손으로 가시에 찔리지 않게 밤알을 꺼냈다. 가끔 애벌레 먹은 밤을 발견하면 소리를 지르며 냅다 던졌다. 가시가 무서워서 그런지 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작은 자루에 밤이 가득 차면 윗부분을 조이고 줄을 잡아서 대롱대롱 집에 가져갔다. 가져간 밤은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는 찐 밤으로 변했다. 할머니가 우리를 불러 모으면 나는 옆에 앉아서 조그만 숟가락을 들고 엄마가 이미 반절로 갈라놓기 시작한 밤을 파서 먹었다. 달콤하고 텁텁했다. 거른다고 걸렀는데도 익힌 애벌레를 발견하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는 쟁반 위에 조용히 내려놓고 다른 밤을 골랐다.





어른들이 모두 거실에 모이면 우리는 갑자기 거실과 안방을 나누는 슬라이딩 도어를 치고 연극을 준비했다. 주제는 항상 랜덤했다. 우리는 어떻게 연극할지 아이디어 회의를 했고 이야기의 구성을 짰다. 보통  아이들이 주인공을 맡았다. 열심히 연습한 뒤에는 연극 시작 예고를 하면서, 오페라 무대에서 커튼이 걷히는 장면을 상상하며 슬라이딩 도어를 천천히 열었다. 어른들의 표정을 눈치로 확인하며 대사를 주고받다가 누군가가 틀릴 때면 우리는 낄낄대며 웃었다. 가끔은 그만 웃고 싶은데 웃음이 멈추지 않아서 배가 아팠다. 숨이 헐떡거려서 목구멍이 칼칼해진 내가 이상했다. 어쨌든 기획한 대로 공연을 해내야 했으므로 공연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공연이 끝나면 어른들은 공연이 어땠든 박수를 쳤다. 우리는 어른들이 공연을 어떻게 봤든 상관없이 뿌듯했다. 그게 공연의 진짜 마무리였다.

 

 



삼계 집에는 가족들 수만큼의 방이 없어서 두 가족은 안방에서 같이 잤다. 자개장에서 꺼낸 빨간색과 노란색의 전통 문양 이불이 깔리고, 덮는 이불까지 놓이면 불을 껐고 양치를 마친 사람이 먼저 자리에 누웠다. 나는 자주 커다란 안마기를 머리맡에 둔 자리에 눕게 됐다. 빳빳하고 미끌미끌한 이불의 촉감은 항상 낯설어서 나는 정말 피곤할 때가 아니면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온갖 신경들이 예민해진 탓에  전엔 들리지 않던 귀뚜라미 소리를 누워서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도 났다. 눈을 말똥말똥 뜨거나, 눈은 감고 생각을 말똥말똥 하다가, 모두 잠든 새벽이 되면 정신이 더욱 또렷해지면서 목이 탔다. 엎드려서 고개를 들면 마루와 맞닿은 창문에 달빛이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비쳐 보였다. 고개를 살짝 움직이면 네모가 되었다가 다시 다이아몬드로 변했다. 깜깜한 거실로 살금살금 나가 고모부 머리맡의 물을 조용히 따라 마시면서, 나는 달빛이 어떻게 다이아몬드 모양이 될까 고민하다 잠들었다.  




작은 밥상 여러 개에 둘러앉아 먹은 떡국, 파리채, 낡은 주황색 소파. 푸근한 집에 어울리지 않는 크고 까만 안마기, 진열장 속 옛날 만화책, 앨범 속 무색의 사진들. 대체로 꿈에서 본 것처럼 흐릿하지만 인공 기억칩을 이식한 것처럼 특정 장면은 뚜렷하다. 내 기억 속 모든 장면은 정지해 있다. 그나저나 마당에 있던 복슬강아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넜으려나. 그때만 해도 맨날 짖기만 하는 강아지의 존재가 내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몰랐는데.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나 같이 연극하던 사촌들에게 안부 묻는 일은 여러 가지 장애물을 통과해야 하는 미션 같다. 출국 전에는 만나 뵙고 싶었는데. 같이 벼 까먹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구나. 모든 게 시간의 탓이니까 그간 지나간 시간과 마음의 거리를 잊기로 모두가 합의하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이만큼이나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데도 그 모든 기억이 남아 있는 건 내가 그때와 같은 사람이라는 증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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