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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Dec 30. 2019

'준(準)연동형 선거제'의 핵심 3가지

'공직선거법' 왜 바꿨고, 어떻게 바꿨나? 그리고 왜 격렬히 싸웠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 27일 격렬한 충돌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웬만큼 정치 뉴스를 잘 아는 사람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개정 공직선거법의 핵심 3가지를 뒤늦게 정리해봤습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던 12월 27일 국회 본회의 현장




1. 선거제, 왜 바꿔야 했나? : 비례성 강화, '초과 점유' 문제의 해결


2004년 17대 총선 이후 우리는 1인 2표제입니다. 지역구 후보에 1표를 행사하는 것 말고도, 지지 정당에 1표를 투표합니다. 이에 따라, 각 정당은 4년 주기로 온전히 정당에 대한 평가와 심판을 받게 됩니다.


문제는 정당별 득표율과 국회 내 의석 점유율의 차이가 크다는 것입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정당투표에서 33.50%를 얻었지만, 의석은 40%가 넘는 122석을 얻었습니다. 정당득표율 3등(25.54%)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으로 1당이 되었습니다.(의석 점유율 41.00%) 반면 국민의당은 정당득표율 26.74%를 얻고도 의석 수는 38석, 전체 의석의 12.67%에 불과했습니다. 정당득표율에 비해 새누리당민주당은 이득을 얻고, 국민의당정의당은 불이익을 본 셈입니다.

이런 특징은 앞서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똑같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새누리당은 정당투표에서 42.80%를 득표하고도 의석의 과반수(152석)를 점유했습니다. 통합민주당은 정당득표율 36.45%에도, 127석(점유율 42.33%)을 차지했고요. 반면, 통합진보당은 10.30%를 얻고도, 의석은 13석(점유율 4.33%)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선거제도가 "지역 조직이 튼튼한 거대 양당에게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입니다.

이처럼 정당득표율과 실제 의석의 간극은 두 가지 제도 때문에 발생합니다. 첫째, 우리 선거제는 지역구당 1명만 뽑는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1등이 가져간 표 말고는 지역구 유권자의 표는 '죽은 표', 사표(死票)가 됩니다.


둘째, 이를 보정하는 비례 의석은 47석으로 너무 적고, 지역구가 253곳으로 너무 많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첫 총선이던 1988년만 해도 지역구 224석, 비례 75석이었습니다. (2.98 대 1) 하지만 2016년 총선에서 지역구는 253석까지 늘었고, 비례의석은 47석으로 줄었습니다.  (5.38 대 1)


과연 지난 28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 비밀은 '담합'입니다. 선거법은 4년마다 한 번씩 치러지는 총선 때마다 조용히 개정됐습니다. 그때마다 지역구는 하나가 '갑과 을'로, 두 개가 '갑, 을, 병'으로  쪼개기가 반복됐습니다. 지역구 숫자가 크게 늘어났고, 비례대표는 줄었습니다. 200명이 훨씬 넘는 현역 지역구 의원들이 자신들의 지역구를 지키기 위해 담합해 온 결과입니다.


그래서 정치개혁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의 화두는 '비례성 강화'였습니다. 외국 사례와 학계 논의를 종합하면, 비례성을 높이는 길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① 정당명부 비례의석의 확대 :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의석을 높이면 비례성이 개선됩니다. 산술적으로는 지역 150석 대 비례 150석이 되면, 현행 방식으로도 비례성을 현저히 높일 수 있습니다. 다만 지역구 축소에 대한 현역 의원들의 반발이 극심해서 통과 가능성이 낮습니다.


② '승자독식 소선거구제' 폐지 : 1개 선거구당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1개 선거구당 2명 이상을 뽑는 중대선거제로 바꾸자는 의견입니다. 바로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었던 '도농복합 선거구제'가 바로 중대선거구제 방식입니다. 다만, 한국당이 급작스레 "비례대표 폐지, 지역구 270석"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 중대선거구제 개혁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③ 연비제(연동형 비례제) 요소 도입 : 지역구 의원의 반발을 고려하면, 비례의석을 늘리는 건 한계가 분명합니다. 이 경우 비례의석을 일종의 '보정(補正) 의석'으로 활용해 비례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A당과 B당이 지역구에서 각각 80석과 40석을 얻었을 때, A당과 B당의 정당 지지율이 똑같이 나오더라도 B당에 더 많은 비례의석을 배정해서 전체 의석 숫자는 차이가 덜 나게 보장할 수 있겠죠. 이렇게 지역구 당선자 숫자를 감안해 비례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을 흔히 '연동(連動)형 비례대표제'라고 부릅니다. 지역구와 상관없이 단순 배분하는 '병립(竝立)형 비례대표제'와 반대 개념이라 보시면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①과  ③을 선택한 원안으로 패스트트랙에 태웠는데, 막판에 ① 비례의석 확대는 없애고, ③ 연동형 요소는 원안보다 대폭 완화해서 넣었습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2. 선거제, 무엇이 바뀌었나? : 30석에 '준연동형 비례제'의 첫 도입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아마도 '비례성'이나 '초과 의석' 얘기에 갸우뚱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1인 2표제인만큼 지역구 투표도 소중한 한 표인데, 이게 반영되는 현행 선거제가 뭐가 문제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 패스트트랙을 추진해 온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사이에서도 이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됐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닌 '50% 준(準)연동형 비례제'라는 절충형 선거제입니다.


우리는 정당에도 투표하지만 인물에도 투표합니다...


잠깐 복잡하지만, 연동률 개념을 잠깐만 설명하고 가겠습니다. 일종의 수학 문제입니다. 수학이 싫으시면 건너뛰셔도 좋습니다만, 이걸 건너뛰면 이번 선거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1) '연동률 100%' 연동형 비례제

전체 의석 숫자를 '정당 득표율'에 100% 따르도록 하는 선거제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전체 의석 200석에 지역구 100석, 비례의석 100석인 나라가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A당이 40%를 득표하면, 전체 의석의 40%인 80석을 가져갑니다. 만약 40%를 얻은 A당에서 지역구 당선자가 48명 있으면, 비례의석은 32석을 할당해서 80석에 맞춥니다. 결과를 정당 득표율과 일치시키는 게 '100% 연비제'입니다.

이런 선거제에서 지역구 당선자가 2명인데, 10%를 득표한 C당의 의석수는 몇 석일까요? 전체 의석의 10%니깐 결과적으로 20석이 배정되어야 하고요, 지역구 당선자 2명을 빼면 비례의석은 18석이 필요합니다. (이런 방식에서는 종종 비례의석의 총합이 100석을 넘게 돼, 초과 의석 문제가 발생합니다만, 이에 대한 설명은 일단 생략하겠습니다.)

2) '연동률 50%' 준연동형 비례제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유권자 입장에서는 지역구 후보에게 던진 표도 정당 투표만큼 소중한 '내 한 표'입니다. '100% 연동형 비례제'는 정당투표를 너무 절대적으로 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1인 2표제니깐, 정당투표가 결정짓는 연동률은 50%로 하자는 게 '준연동형 비례제'의 취지입니다.

다시 앞서 설명드린, 전체 의석 200석에 지역 100석, 비례 100석인 나라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10%를 얻은 C당은 '100% 연동형 비례제'에서 20석을 얻어야 하기에, 지역 2석을 얻고도 연동형 비례의석 18석을 가져가게 된다고 설명했죠? 그런데 '50% 연동형 비례제'에서는 이 연동형 비례의석이 절반으로 줍니다. 그래서 C당은 지역구 2석에, 비례의석 9석(100% 연비제일 때의 절반)을 합쳐 11석을 얻습니다.

A당은 지역구 48명 당선에, 정당득표율 40%라고 했죠? '100% 연비제'였다면 전체 의석의 40%, 80석을 차지해야 하는 A당은, 이제는 연동형 비례의석(32석)의 절반인 16석을 얻어서, 총 당선자 64명(지역 48명 + 비례 16명)을 배출하게 됩니다.


설명은 거창했지만, 내년 총선에서 이 산식이 필요한 것은 단 30석에 불과합니다.


이번에 통과된 선거법은 전체 의석 수 변화가 없습니다. 전체 의석 300석 그대로 유지됩니다. 지역구 253석과 비례의석 47석도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무늬만 개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비례의석 47석을 배분할 때 앞서 설명드린 '연동률 50%' 준연동형 비례제가 쓰인다는 겁니다.


다만, '준연동형 비례제'도 내년에 실시되는 21대 총선에선 연동 의석의 총합이 30석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뒀습니다. 넘을 경우엔 각 정당의 연동 의석 비율대로 줄여서 총합을 30석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번 선거법 개정으로 의석 배분 방식이 바뀐 건 최대치로 잡아도 30석에 불과합니다. 시뮬레이션의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이 각각 10~15석 안팎의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체 의석 300석 중 270석은 전혀 영향받지 않는 선거법 개정인데, 왜 이렇게 격렬하게 격돌한 것일까요? 그 이유까지 살펴보고 쓸데없이 긴 글 마무리 짓겠습니다.


지난 12월 27알 본회의 시작 전, 국회의장석 주변의 통로를 막고 결사항전을 외치던 자유한국당 의원님들의 모습.




3. 선거제, 왜 격렬하게 싸웠나? : '준연동형 비례제' 첫 발에 담긴 의미들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1년 반 동안 취재했던 입장에서, 사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소수의 의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선거제 개혁에 끌려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선거제의 본질은 '양당제'를 '다당제'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과 30석에 생긴 변화지만, 이제 두 가지는 확실해졌습니다. 첫째, 교섭단체는 3곳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둘째, 17대와 18대 총선과 같은 이른바 거여(巨與), 과반 의석을 지닌 여당은 탄생할 수 없습니다. 초과 점유율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제도가 양당제를 추동하는 제도였다면, 새 제도는 정당투표에 나타난 민심을 반영해 다당제를 추동하는 제도인 겁니다.



사실 지난 4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된 이후, 여야 모든 정치인들은 이 법안이 가결되면 다당제가 확산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따로 설명드리겠지만, 민주당과 한국당의 대다수 정치인들이 이 법은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통과 가능성을 감지한 의원 가운데에는 막기 위해 분주했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18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패스트트랙에서 내려오자"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놔두면 '여야 4+1 공조'는 무너질 것"이라는 한국당의 안일한 인식이,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에서 명분 있게 내려올 다리를 끊어버렸습니다. 정치권에 따르면, 한국당 지도부는 "선거제를 우리 '제1야당' 제외하고 처리할 수 있겠냐"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선 정부 여당과 검찰의 갈등이 흔들리던 패스트트랙에 추진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끝으로 '황교안 호(號)' 한국당의 비타협적 투쟁이 ‘4+1 공조'에 구심력과 속도까지 더했습니다. 결국 선거법은 재적 인원의 절반이 훌쩍 넘는 압도적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예상과 달랐던 156표라는 압도적인 '표 연합' 앞에 자유한국당이 선택한 길은 '피해자 되기'였습니다. "한국당은 선거법 날치기의 피해자이니, 다음 선거에서 꼭 여권 심판 투표를 해달라"고 호소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래서 국회 경위들에게 끌려나갈지언정, 문희상 국회의장이 입장할 통로를 틀어막았던 겁니다. 또 손팻말을 던지는 게 무기력할지언정, 쉼 없이 허공에 손피켓을 흩날리며 절규했습니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뭔가 보여주는 게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단 '30석'에 불과한 변화에도 처절하게 투쟁했던 겁니다.


그러나 과연 이 전략이 과연 총선에서 먹힐까요? 아니면, 한국 보수정당 사상 가장 참혹한 '전략적 실수'로 훗날 기록될까요? 총선이 100일도 넘게 남았기 때문에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보인 각 정당의 전략과 부침은 훗날 한국 정치사에 흥미로운 장면으로 남을 듯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도, 내년 초까지 틈틈이 복기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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