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시험관
사람인지라, 지극히 평범하고 나약한 그저 사람인지라 나도 검색을 안 해보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검색을 하면 할수록, 남들의 후기(?)를 읽다 보면 읽을수록 더욱더 깊은 절망과 두려움에 빠져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이걸 정말 할 수 있을까.
다음 주에 있을 난자 채취를 위해 오늘 밤 9시 무려 3대의 주사를 셀프로 찔러야 하는 나 자신을 위로할 방법을 찾다가, 나와 다른 상황의 사람들의 말에 감정을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어차피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괜한 우울감에 빠지지 않고 싶어서 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나'의 글을 적는다.
20년 1월, 건강검진에서 자궁에 4cm 정도 되는 혹을 발견했고, 그저 단순히 추적검사를 하러 간 산부인과에서 5cm로 자라났고, 그 말고도 3cm쯤 되는 다른 혹도 있다고 했다. 위치가 애매하여 CT 촬영까지 진행했다. 사실 자궁의 혹쯤은 여자라면 누구나 달고 사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존재감이 어엿하게 있는 혹을 그대로 두는 것은 말이 안 되고, 나이도 있으니(없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있다고 하심) 딩크가 아니라면, 혹을 제거하고 1년 후 아기를 갖던지, 하루라도 빨리 아기를 가진 후에 제거를 하던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왜인지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딩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기를 간절히 원한 순간이 인생에 없었다. 왜 딩크가 아닌지, 아니면 왜 아이를 낳고 싶은지, 누군가 이유를 묻는다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답해줄 수 없이 아무 생각 없는 것이 맞다. 왁자지껄 요란한 초등학생 아이가 엘리베이터에 타면 나는 너무 불편한 나머지 내려버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오망 조망한 두 살짜리 조카를 보면 나만큼 신나게 놀아주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아이가 극도로 싫기도 하고, 또 귀엽기도 한.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다.
어찌 됐든 선생님의 말에 강력한 결심보다는 그저 궁금함으로 남편과 난임 병원을 향했다. 검사 결과 둘 다 문제가 전혀 없는데, 5년 동안 피임을 하지 않고도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면 '아묻따' 시험관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여러 검사도 받고, 설명도 들었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궁금해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무지렁이라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줄줄 따라가는 어쩌다 시험관 준비생이 되었다. 얼마나 무지한지 둘 다 건강하다고 하니 어쩌면 자연임신보다 편리하겠다(?)는 오만한 생각마저 들었다.
배란이 잘 되는 사람인지 검사하러 갔던 날, 배란이 마침 잘 되고 있어 이대로는 아까우니 내일 인공수정을 한 번 해보자는 선생님의 말에 제법 당황이 됐다.
내일이요?
원래 이렇게 바로. 막. 그냥 하는 건가.
남편은 가능성은 적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넣는 아파트 청약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해 보자며 오히려 흔쾌했다. 결과는 청약만큼 시원하게 탈락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과배란을 유도하여 정석대로 준비한 인공수정이 아니었으니 실패는 당연한데도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바로 시험관 준비에 돌입했다. 말로만 듣던 배 주사를 셀프로 매일 아침 쿡쿡 찔러대며 '나 진짜 왜 이러고 있지' 싶은 생각이 계속 든다. 그리고 점점 대상을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무섭다는 생각도 계속 든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마음을 간질이는 이 시점에 '시험관'이라는 선택이 진정 나와 남편의 선택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어 졌다. 엉겁결이기는 하지만 '그래, 한 번 해보자'는 오직 나와 남편의 선택으로 이 과정을 겪어내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확실히 하고 싶다. 하고 싶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아기에 대한 간절함이 아직은(?) 없는 내가 정말 난임일까.
난임 병원에는 앉을자리도 없이 사람이 가득하고 모두가 간절한 표정으로 와 있다. 선생님, 간호사분들은 아무 염려 말라는 말로 용기와 희망을 준다. 그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정말 난임일까. 비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