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구 할래?
엄마는 ISFJ, A형
어렸을 때부터 낯을 유난히 많이 가렸다. 내 기질은 그런 기질이다.
사람을 알아가고, 좋아하고, 그 사람과 깊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그런 기질.
하지만 유난히 사교적인, 흔히 말해 핵인싸인 부모님으로부터 가정교육을 철저히 받고, 나이가 들어가며 적절한 사회생활을 할 뿐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든지, 어느 순간엔가 진행자 역할을 맡고 있는 나는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아 감사하면서도 그놈의 기질 때문에 관계는 늘 어렵고, 피곤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에게까지 낯이 가려질 일인가.
얼굴도 모르는 너, 내 아들.
너무나 운이 좋게도 첫 시험관 시도가 성공하여 아기가 생기게 된 나는 임신 기간 내내 비임신 기간 때보다도 바쁘고 스트레스 가득한 회사 생활 때문에 늘 뱃속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나오면 잘해줄게’ 하며 출산을 기다렸다.
그런데 사실, 회사 일은 핑계이고 아무리 내 아기라지만 얼굴도 아직 모르고 통성명도 하지 않은 인간과 마음 깊이 교감하고, 친한 척(?) 하기가 왜 이렇게 쑥스럽고 낯이 간지러운지. ‘아직은 잘 모르겠고, 배에서 나와 얼굴 트고 진지하게 사귀어 보자’하는 마음이 저 깊은 곳 어디엔가 늘 자리했다. 다른 엄마들처럼 ‘우리 아가, 엄마야’ 하는 태담은 시도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끄적였던 (고작 10개 남짓한) 태교일기에는 ‘안녕, 아줌마는 너의 어미가 될..’라고 쓰여있는 걸 보면, ‘나도 참 별나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동안 만나온 다른 사람에 비하면, 이 친구는 말 그대로 ‘내 안에’ 있기도 하고, 태동이 있을 땐 반갑기도 하고, 또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 나왔을 때는 내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해가며 간절한 기도도 하게 되고, 임신 당뇨에 당첨이 되었을 때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다이어트할 때도 굶으면 굶었지 식단은 죽어도 하지 않던 내가 꼬박꼬박 식단 챙겨가며 혈당 관리하는 모습을 보며 ‘아, 나 이 친구 좋아하네’라는 막연한 느낌은 있었다.
우리 친구 할래?
그러다 10달이 흘러, 내 뱃속에 있는 친구를 드디어 만났다.
수술 후 회복실에서 깨어나고 처음 만난 너무 작디작은 내 친구(2.74kg)
아무리 낯을 가린다지만 그래도 이 친구를 처음 대면하게 되면 어떤 ‘운명’ 같은 찌릿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기대했던 내가 너무나도 무색하게
만나자마자 “너무 작아요”라고 내뱉고, 다시 잠에 빠져든 나. 나 정말 왜 이러니.
내심 남들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과 함께 아이를 받아 안으며 ‘아가야, 엄마야’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이 차오르길 기대했는데 역시 나는 안 됐다.
이 친구는 작고 귀여운 생명체일 뿐, 아직은 잘 모르는 분…
이 친구를 만나고 3일째 되던 날, 수술 부위가 너무 아파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첫 (분유) 수유를 시도했던 나는 더 큰 충격에 빠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친구도 낯을 가리잖아?!!!!!!!!?!?!?!’ 간호사 선생님이 주는 우유는 쭈압쭈압 잘도 받아먹더니, 내가 물리려고 하니 입을 있는 힘껏 꽉 다물며 조금의 틈도 내주지 않는 그 녀석. 충격적이면서도, 내 아들이 맞다는 묘한 감정이 그제야 들었다.
그리고 원하던 뜨거운 눈물(반가움의 흘리는 눈물)은 아니지만, 뜨거운 눈물도 분명히 흘렸다.
‘간호사 선생님은 이 친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주는데, 어미라는 사람은 아직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다니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마음은 굴뚝인데, 내 몸뚱이는 왜 이렇게 아프고 아픈가’
‘아무리 처음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모든 게 어려울 일인가’
등등의 이유인데, 이건 아무래도 많은 엄마 선배님들이 말씀하신 ‘미친 호르몬’의 이슈 같다.
이렇게 내 뱃속에서 노니던 작은 친구를 만난 지 5일째가 되어 조리원에 함께 와있는 지금. 내가 본 아기 중에 가장 귀여워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까지는 들었는데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몰라 어색해하고 있다. 아직도 내가 주는 분유는 용량의 반만 먹고 포기하는 너.
우리, 친구 할래?
세상 모든 엄마, 아빠, 그리고 아기 모두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